중소기업청장 후보자로 발표된 지 3일 만인 18일 사의를 표명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는 당당했다. 그는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백지신탁 규정이 바뀌지 않으면 기업인이 공직에 들어가기는 힘들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화답하듯 벤처사업가 출신인 전하진 새누리당 의원은 주식 백지신탁을 규정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최대한 빨리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도 고위공직자의 보유주식이 직무관련성이 있더라도 팔지 않고 보관할 수 있도록 하는 보관신탁제도 도입을 검토한다고 한다. 황 대표의 경솔함과 청와대의 허술한 인사시스템이 문제가 아니라 공직자윤리법이 '절대악'으로 비쳐지는 모양새다.
재직기간 주가상승 차익 처리 등 보완책이 없는 상태에서 그냥 기업 오너인 채로 중기청장이 되려 했던 황 대표의 판단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가 대표이사를 그만뒀다고 해도 중기청장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회사, 즉 주성엔지니어링 쪽으로 팔이 굽지 말라는 법이 없다.
또 황 대표가 그대로 중기청장이 됐다면 정부의 각종 국책과제 선정에서부터 정책자금 지원까지 공정성 논란이 시도 때도 없이 불거졌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본인의 의도가 아니라 한들 중기청 공무원을 비롯 자금집행을 하는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산하기관 담당자들은 재직기간 내내 눈치를 봤을 게 뻔하다.
내정설이 돌면서 지난주 주성엔지니어링의 주가가 17%나 뛰었다. 이는 단순히 황 대표가 주성엔지니어링의 대표직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회사와 단절되지 않는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행정안전부가 황 대표의 주식 보유가 '이해의 충돌'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유권 해석한 것 아닌가.
공직자윤리법은 고위공직자들이 사익을 추구할 수 있는 상황을 미연에 없애 공익에만 전념하도록 만든 장치다. 국가를 위해 일한다면 개인의 이익은 버려야 한다. 그런데도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처신을 하면서 얼렁뚱땅 막중한 공직을 수행하려 했다면 그건 명백한 잘못이요 국민을 무시하는 안이한 태도다.
황 대표가 신중하지 못하게 중기청장 내정을 수락하고 청와대가 주식 백지신탁 등 지분매각 문제를 확실히 단속하지 않는 책임은 뭐라 변명해도 태산처럼 크다. 한국정부 수준을 무슨 아프리카의 최빈국 모양으로 떨어뜨려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지신탁제도가 2004년 박근혜 대통령이 총선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주도적으로 마련한 제도라는 것을 황 대표가 아는지 모르겠다. 자기 눈의 들보를 놔둔 채 제도만 탓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