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재편] 4강 체제속 시장쟁탈전 가열

국내 최대의 정유회사인 SK㈜가 쌍용정유 인수에 실패함에 따라 국내 정유업계는 SK㈜와 현대정유등 국내 2개사와 외국과 50대 50 합작인 LG칼텍스정유, 외국계로 완전히 변신하는 쌍용정유등 4사 체제로 재편됐다.62년 대한석유공사 창립이래 37년을 이어온 국내 석유산업에 큰 변화가 예고돼있다. 그룹의 주력사로서 나름의 거대한 플랜을 세우고있는 SK㈜, 안정적인 경영환경속에서 탄탄하게 내실을 다져가고있는 LG정유, 빅딜(대규모 사업교환)로 한화에너지인수에 성공한 뒤 본격적으로 변신에 나서는 현대정유, 막강한 원유구입선을 바탕으로 공격경영에 나설 쌍용정유 등. 모두가 나름대로 정유업계의 변화를 주도할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있다. 특히 정유업계는 「공격경영」의 대명사 쌍용정유가 SK㈜에 인수되는 대신 독자생존으로 선회하면서 최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사의 지원아래 거센 반격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유업계 판도는 이렇게 변한다 = 정유업계는 62년 유공(현 SK㈜), 67년 호남정유(현 LG정유), 69년 경인에너지(현 현대정유)등이 제1, 2, 3 정유회사로 등장하면서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 69년 극동쉘석유(현 현대정유)가 등장했고 74년 이란과 합작한 한이석유회사(현 쌍용정유)가 막차를 탔다. 이렇게 보면 국내 정유업계는 SK㈜가 혼자 차지했던 파이를 차례로 나눠가지면서 성장한 셈이다. 업계의 맏형인 SK㈜는 지금 35%안팎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정유업계는 5사 체제를 유지했다. 지난해말 계획대로 쌍용정유의 2대 주주인 쌍용양회가 지분 28.4%를 해외에 매각했어도 이런 구도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올들어 한화에너지가 현대정유로 넘어가는 빅딜이 어렵게 성사되고 SK㈜의 쌍용정유 인수방침이 발표되자 갑자기 3강 체제가 눈앞에 다가온듯 했다. 그러나 SK㈜의 쌍용정유 인수가 무산되고 아람코가 쌍용정유를 장악하게 되면서 업계는 4사 체제로 들어서고있다. 지난 6월말 현재 휘발유시장만을 기준으로 한 점유율은 SK㈜ 35.5%, LG정유 31.5%로 멀찌감치 앞서가고 한화에너지를 흡수한 현대정유가 17.7%, 쌍용정유가 15.3%로 뒤를 잇고있다. 물론 현대정유는 지금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국영투자회사 IPIC로부터 5억달러 규모의 외자를 유치한 뒤 현대그룹에서 분리를 추진할 계획이다. 아직 IPIC로부터 외자도입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최근의 협상속도로 볼 때 늦어도 오는 10월이전에 가시적인 성과를 올릴 전망이다. 현대정유의 행보가 아직 가변적이지만 어떤 경우든 4사 체제를 뒤흔들 정도는 아니라는게 중론이다. 상당기간 국내 정유업계는 이런 모습을 굳혀가는 과정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석유제품 소비자는 즐겁다 = 정유업계가 재편과정을 겪으면서 혜택을 보는 쪽은 소비자들이다. 시장이 혼란스러울수록 기업간 경쟁이 격화하고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돌아가는 과실은 커진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각 정유사들마다 시장 공략 포인트가 다르다. 처한 위치가 다르고 그에 따라 갈 길도 다르다는 것. 우선 업계의 맏형인 SK㈜. SK㈜는 SK그룹의 역량을 최대한 이용할 계획이다. 자동차 운전자들에겐 운전정보는 물론, 생활정보서비스도 함께 지원한다. SK㈜에 오면 모든게 다 해결된다는게 그들의 슬로건이다. 특히 보너스카드를 이용한 마케팅에서 앞서가고 있다. LG정유의 지난해 순이익은 3,700억원대에 이른다. 그만큼 재무구조가 탄탄하고 자신감도 강하다. 고객서비스 분야에서 색다른 아이디어가 많고 대부분 성공을 거두었다. 우량기업 이미지를 확대하고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차분한 전략이 주효하고있다. 현대정유는 젊은 이미지를 중시한다. 한화에너지 인수이후 회사의 색깔이 바뀌고 로고도 전혀 새로워진다. 그동안 다소 부진했던 카드마케팅도 본격화한다. 전국 계열주유소 숫자가 2,400여개로 늘어난데다 특히 서울인근 주유소망이 유난히 강한 한화에너지를 인수한 점이 향후 마케팅 전략을 짜는데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 쌍용정유는 쌍용그룹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외국계 정유사로 변신하면서 국내 시장의 오랜 관행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졌다. 좀 더 홀가분한 상태에서 품질경쟁, 가격경쟁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과감한 전략을 기대하고 있다. 아람코의 원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장점이다. 가격인하 경쟁을 주도할 능력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국내 석유산업의 미래 = 앞으로 석유수요는 꾸준히 늘겠지만 전체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001년 석유수요 전망치는 8억5,800만배럴. 2010년 10억3,100만배럴에 이어 2020년 12억800만배럴 정도로 증가한다는게 산업자원부의 분석이었다. 석유의 에너지 비중은 2001년 54.4%에서 같은 기간 50.5%, 49.1%로 낮아질 전망. 그러나 정유업계는 이 정도면 당분간 주(主)에너지로서 석유의 압도적 우위는 변함이 없을 것으로 분석하고있다. 또 경제발전에 따라 석유산업도 동반 발전한다는 희망적인 분석도 내놓고 있다. 석유가 고갈되는 자원이긴 하지만 회수기술이 발달하고 신규탐사로 꾸진히 추가매장량을 발견하고 있어 앞으로 100년은 걱정없다는 것이 골자다. 시각을 국내 정유업계만으로 한정하면 관건은 해외 석유개발이다. 아무리 석유산업의 위상이 든든해도 한정된 경제규모를 감안하면 정유업계는 이제 밖으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업계 일각에서 우리나라를 동북아시아 석유시장 협력기지로 육성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베리아의 천연가스와 석유등 에너지자원 개발에 적극 참여하고 중국이나 북한, 시베리아지역 개발을 위한 협력체제에 참여, 석유산업에 관한 한 동북아 중심지 역할을 해야한다는 주장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아래서도 2,000억∼3,000억원 규모의 순익을 올린 국내 정유사들이 이익의 일부를 해외자원 개발에 쏟는다면 그 성과는 기대이상일 것』이라는게 정유업계 관계자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손동영 기자 SON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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