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들이 최근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영어 과목의 절대평가 전환과 관련한 포럼을 잇달아 개최해 그 배경에 교육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포럼이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꾸기 위한 정부의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2일 서울 중구 정동 본원에서 '수능 영어영역 절대평가 도입방안 탐색'을 주제로 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수능 영어영역 절대평가 도입 시 정책적 고려사항' 제목의 주제 발표에 나선 강규한 국민대 영문과 교수는 "절대평가는 학생 간 경쟁을 완화하고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부작용과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대입 전형에서 수능의 비중을 약화시키는 대신 다양한 요소가 활용돼 학교 현장에서 창의 인성 교육을 확산시키고 학교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수능 영어시험의 절대평가 도입에 관한 국책기관의 포럼 개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15일과 24일에는 한국교육개발원이 서울과 대전에서 '수능 영어과목 절대평가 도입에 대한 공개토론회'를 주제로 정책포럼을 열었다. 특히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지난 3월 "수능에서 영어를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충분히 검토할 만한 과제"라고 밝힌 바 있다.
수능 영어의 절대평가 도입은 영어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현 등급제 상대평가는 1등급 학생을 4%로 변별하기 위해 문제를 어렵게 낼 수밖에 없는데 이는 결국 고득점을 받고자 하는 학생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육부와 통계청의 사교육비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학생 1인당 월평균 영어 사교육비는 8만1,000원으로 주요 교과 가운데 가장 많았으며 전년 대비 감소한 다른 과목과 달리 유일하게 1.3% 상승했다.
국책연구기관들의 이 같은 주장과 관련해 교육계 안팎에서는 영어 과목의 절대평가제 도입을 위한 군불 때기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학계와 전문가 사이에서 수능 영어 절대평가 도입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정부 차원에서 이를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책연구기관들을 내세워 여론몰이를 한 다음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영어의 절대평가 도입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교육계는 수능 영어 절대평가 도입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영어에서 줄어든 사교육이 수학이나 과학탐구 등 다른 수능 과목으로 이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은 "수능 영어도 한국사처럼 만점자가 많이 나와도 상관없는 절대평가 방식이 도입되면 사교육 경감 효과가 클 것"이라면서도 "현재와 같은 수능 변별력 프레임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영어만 절대평가로 바뀌면 수학에 대한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도 "수능 영어에 대한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주자는 취지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정시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뽑지 못한다는 위기감을 가진 대학들이 구술면접을 부활시키거나 현재보다 훨씬 어려운 방식의 대학별고사를 진행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임 대표는 "오히려 절대평가에서의 최상위등급만 맞추면 된다는 생각에 중학교 단계에서 수능 영어를 대비하는 조기 선행학습 열풍이 불 수도 있다"며 "2017학년도 수능부터 절대평가방식으로 도입되는 한국사의 시행착오를 참고한 뒤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