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샐러리맨에서 시작해 국내 대표적 소프트웨어 업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현재 IT 업계 대표의 면면을 보면 대다수가 창업자 본인이다.
이홍구(사진) 한글과컴퓨터 부회장 겸 대표는 IT 업계에서도 드물게 밑바닥부터 착실히 올라온 케이스. 이 대표는 대영전자 신입사원으로 IT 업계에 발을 디뎠다. 당시는 IT 업계라는 단어조차 생소했고 전자산업으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그때가 1981년.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IT 업계에 몸담아왔다. 무려 34년째다. IT 업계의 맏형 격이다.
IT는 분야가 다양하다.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세세하게 나누면 수십 가지다. 현재 이 대표는 국내 소프트웨어 대표 회사에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 대표의 시작은 엔지니어였다. 그가 대영전자에서 하던 일은 통신 분야였다. 당시 업계는 한마디로 군대였다. 그는 그때를 기억했다. 일주일 내내 선배와 밤을 새우고 집에 들어가지 못한 게 태반이었다. 이 대표는 강도 높은 업무량을 '기회'라고 말했다. '철의 신입사원'이었다.
그는 "일에 빠질 수 있는 것이 상당한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그만큼 빨리 배울 수 있는 시기이고 일이 주어질 때마다 선배들이 내게 주는 기회라고 여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첫 성과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당시 한국에 마이크로웨이브라는 통신 시스템을 도입하는 상황이었다. IT 초창기 시절, 그의 선배도 이 기술을 잘 알지 못했다. 모두가 잘 알지 못했던 때, 결국 그가 전국에 있는 통신망을 관제하는 시스템 설계를 맡게 됐다. 이 대표는 이 또한 기회라고 여겼다. 기술서적 수십 권을 읽고 모르면 아는 사람을 찾아서 배웠다. 그리고 결국 목표를 달성했다. 그때가 사회생활 2년차였다.
문제가 생긴 적도 있었다. 이 대표는 문제를 여전히 기회라고 생각했다.
"1980년대만 해도 IT 제품에 대한 신뢰성이 부족했습니다. 지금은 3~5년간 고객이 제품을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모형이 있는데 당시에는 없었어요. 품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섭씨 40도가 넘는 창고에 들어가 산 적도 있었습니다."
IT의 개념도 자리 잡히지 않은 시기에 그는 기술 관련 원서를 밤새 번역하고 협력사에 자료를 정리해 보내는 일을 스스로 했다. 문제해결 방법도 조금 더 잘 아는 기술자를 직접 찾아가 물었다.
그는 이렇듯 문제를 해결하는 일들이 기쁘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큰 것 한 방이 아닌 작은 문제 하나하나를 해결한 것이 자신의 커리어 전부라고 했다.
"내가 맡은 일이고 이러한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은 하나의 인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과제들이 내 미래를 쌓아가는 토대라고 여겼습니다. 하나하나 해결하는 것이 내가 좀 더 이 사회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 이면에는 언제나 자신을 한국 대표라고 생각하고 일을 했던 것이 작용했다. 대영전자를 그만두고 IBM에 있을 때도 그랬다. 이 대표는 당시 미국 본사 직원과 e메일로 일 얘기를 했다. 시차는 12시간 차이. 일이 끝나고 주로 저녁에 e메일을 보내곤 했다. 다음 날 낮에 받은 e메일을 확인하고 답장할 수 있었는데 이 부회장은 밤을 샜다.
예컨대 새벽1시에 e메일 답이 오면 새벽1시30분쯤 이 부회장이 다시 e메일을 보내는 식이었다. 일부러 그랬다. 한국 사람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당시 미국 직원들은 이를 놀라워 했다. 열심히 하는 모습에 본사에서도 나중에 협조를 많이 해줬다. 이런 식으로 본사에 적극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어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과 일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어서"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사회 초년병 시절에는 기술적인 문제로 고민을 했습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국가, 산업, 기업 대 기업의 문제로 번졌습니다. 결국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 간 의사소통에 점점 관심을 기울였다. 컴팩에 있을 때는 경제서적을 팠다. 그때까지 경제는 문외한이었다. 당시는 'IMF 시절'. 미국 본사에 한국과 사업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 외환 사정, 정부 정책, 물가지수, 기업들의 정책 등 거시경제 공부에 몰두했다. 스스로 리포트도 만들어 본사에 보고했다. 그가 할 일이 아니었다.
늘 이런 식이었다. 한 발 앞서 상대방에게 신뢰를 줬다. 그랬더니 2000년에는 사업총괄이 됐다. 본사에 시시때때로 필요 이상의 보고를 하고 사업 제안을 했더니 '그러면 당신이 해봐라' 하는 식이었다. 영업경험도 전무했다.
사업총괄이 되고 컴팩코리아는 승승장구한다. 당시 컴팩은 AS를 하지 않았는데 그가 취임하고 AS도 시작됐다.
"당시 외국계 기업을 보면 자신들이 팔고 싶은 제품을 팔았습니다. 외국계 기업의 한계였는데 취임하고 우리나라 고객이 사고 싶은 제품과 서비스를 팔아야겠다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AS를 시작하고 본사에 적극적으로 요청해 생산도 국내에서 하게 됐다. 취임 전에는 적자만 100억원대였다. 컴팩의 점유율은 0.2% 남짓. 취임 후 2년 만에 시장점유율이 15%로 올랐고 200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본사에 신뢰를 보내줬기에 컴팩도 적극 지원했고 결국 한국지사를 글로벌 주요 시장으로 만들었다.
2010년에는 한글과컴퓨터 대표에 올랐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대표로 변한 것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큰 변화로 여기지 않았다. 그에게 한컴 CEO는 하나의 도전이었다. 도전은 생각보다 거셌다. 그가 취임한 2010년은 모바일이 막 시작되던 해였다. 세계 유수의 IT 기업들은 선제적으로 모바일 관련 서비스를 속속 내놓았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모바일 트렌드에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등 과거 IT 기업들의 어려움이 있었다.
이 대표는 전열을 정비했다. 그는 "해외에서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를 이길 자신은 없다"며 "그래도 글로벌 진출은 꼭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 방향은 글로벌뿐만이 아니다. 그는 "앞으로 3~5년을 예측해 지금 거론돼 있지 않은 사업들을 발굴해 한컴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목표도 얘기했다.
'H워드' 내년 북미 등 공략… 非오피스 라인업도 확대 ●매일 달라지는 IT업계 … 이홍구 대표의 전략은 매일 달라지는 정보기술(IT) 업계. 하루에도 수많은 업체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글과컴퓨터 수장 이홍구 부회장 겸 대표의 전략은 무엇일까. 그는 이에 대해 '틈새시장 공략'이라고 말한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 기업과 벌이는 경쟁은 버겁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대표가 준비하고 있는 글로벌 제품은 내년쯤 출시될 예정이다. 현재 다국어를 지원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름은 'H워드'. 현재 국내에서 쓰이는 국내용 '한글'과는 다른 모습이다. 북미·유럽·중동 쪽을 주력 시장으로 가격경쟁력 등을 무기 삼아 해외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또 다양한 제품 라인도 확보해나가고 있다. 이 대표는 먼저 과거의 옷부터 벗었다. 한컴은 사실 24년간 오피스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는 '비욘드 오피스(Beyond office)'라는 개념을 말했다. 자체 연구개발(R&D) 기술을 확보하고 외부 기업을 적극 인수함으로써 오피스에만 주력하던 한컴에서 더 다양한 가치를 소비자에게 선보인다는 것이다. 한컴의 3년, 5년, 10년 후를 내다본다는 계획이다. 글로벌과 모바일을 공략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조직 의사결정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틈새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민첩한 판단과 행동이 선제조건이기 때문이다. 현재 IT 서비스의 성패는 기술이 문제라기보다 순발력의 문제라고 그는 지적했다. 이 대표는 한컴 조직의 장점이 바로 민첩성이라고 말했다. 사업의 발굴·개발·마케팅·영업이 하나의 의사결정으로 진행된다고 한컴 조직의 장점을 설명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도 고객의 다양한 만족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의사결정과 소통의 단순함을 가장 중요하게 다룰 것"이라고 전했다. |
■ 이홍구 대표는 △1957년 서울 △경복고·한양대 △1981년 대영전자 입사 △1985년 한국IBM 국제구매부 부장 △2002년 한국휴렛팩커드(HP) 퍼스널시스템그룹(PSG) 부사장 △ 2010년 델인터내셔널 대표 △2010년 한글과컴퓨터 대표이사 △2013~ 한글과컴퓨터 대표이사 부회장 |
사진=권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