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가기가 겁난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7일 주재한 정·재계 간담회에서 사실상의 재벌해체를 선언한 「5대그룹 구조조정 합의문」에 손수 도장을 찍어야 했던 그룹총수들의 속마음이다.
「권력은 유한하지만 재벌은 영원하다」며 막강한 힘을 발휘했던 총수들로서는 앞으로 1년안에 130개 계열사를 처분, 20조원의 빚을 갚지 않으면 강제퇴출되는 현실이 믿기지 않을 따름이다.
재계에서는 국민의 정부가 지난 40년동안 어떤 정권도 이루지 못한 「야생마(재벌)의 울타리(구조조정) 끌어들이기」에 가시적 성과를 거둔 것은 『목표달성을 위해 먼길을 돌아가는 김대통령 특유의 치밀한 「소걸음 전략」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김대통령의 「소걸음 전략」은 1년동안의 발언록에 그대로 드러난다. 김대통령은 올해 총수들과 3차례 만났는데 만날때마다 발언강도를 조금씩 높혀가며 동의를 얻어냈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로 사회전체가 뒤숭숭했던 1차 회동(1월13일)에서는 『경영역량을 핵심사업에 집중해 달라』고 말해 호응을 얻었고 두번째 만난 7월 4일에는 『빅딜을 신속히 합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마침내 7일에는 『주식이 많다고 능력없는 사람이 경영을 하는 것은 옛날 얘기』라며 재벌 총수들이 합의문에 도장을 찍도록 만들었다.
청와대 오찬을 과거처럼 「대통령과 밥먹는 행사」로만 알았던 총수들은 김대통령의 소걸음식 논리전개에 동의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재벌개혁을 약속해 버린 셈이다.
『청와대에서 칼국수 먹던 시절이 그립다』라는 재계 관계자의 푸념은 「재벌개혁」시대의 스쳐지나가는 말이 결코 아니다. 조철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