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포스트시즌 올라 작년의 20배 7,000벌 완판
● 치킨
한국시리즈 1·2차전 대구구장 주변 치킨집 총 6,000마리 팔아
● 직관하는 회장님
VIP아닌 내야 블루지정석 고집… 박용만 두산 회장 직접 관람도
● 女心
두산 관중 6대4로 여성이 역전 "이젠 선수 얼굴보다 게임 즐겨요"
플레이오프에서 떨어지기는 했지만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오른 LG는 유광점퍼 7,000벌 '완판' 신화를 남겼다. 지난해 판매량의 20배. 9만8,000원으로 비교적 고가임에도 없어서 못 팔았다. 광택소재의 가을용 상의인 유광점퍼는 LG가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2002년의 추억을 간직한 아이템. LG가 번번이 포스트시즌에 미끄러져 지난 10년간은 선수도, 팬도 입을 일이 없었다.
유광점퍼는 가을야구라고 불리는 포스트시즌의 한 상징물이 됐다. 또한 포스트시즌의 열기 속에 나타나는 반짝 특수 등 경제적인 유발 효과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고조에 이른 가을야구의 흥행불패 신화 속에 숨어 있는 키워드들을 찾아봤다.
◇응답하라 그때 그 시절=이번 한국시리즈도 '추억'이 대세다. 관중석에서는 홈런왕 이승엽(삼성)의 전성기 시절 유니폼과 두산의 OB 유니폼이 눈길을 끈다. 삼성 구단은 대구구장 관중석 상단에 대형 사자모형 2대를 설치했다. 삼성 관계자는 "2006년 한 대에 700만원을 주고 제작한 사자모형을 포스트시즌만 되면 꺼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세 차례나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한 사자모형은 삼성의 가을야구를 대표하는 명물로 자리잡았다.
◇관중 3명에 치킨 한 마리=야구 경기도 식후경이다. '치맥(치킨과 맥주)'으로 대표되는 야구장 음식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 간식으로 딱이다. 포스트시즌 때 가장 바쁜 곳은 치킨집이다. 한국시리즈 1ㆍ2차전이 벌어진 대구구장 주변의 치킨집은 노점상만도 십수개. 한 경기에 이들이 튀긴 치킨이 3,000마리가 넘는다고 하니 3명에 한 마리꼴로 팔려나간 셈이다. 대구구장 정원은 1만명이다.
치킨이 압도적 인기인 대구와 달리 잠실 입맛은 다양하다. 야구장 1층에 햄버거ㆍ피자 등 각종 패스트푸드 매장들이 들어서 있어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이들 매장은 야구가 있는 날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지만 야구가 없는 날은 파리를 날린다는 단점이 있다.
◇'시구'의 법칙=과거 정ㆍ재계 인사들의 전유물이었던 프로야구 시구는 최근 몇 년 새 연예인들로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왔다. 연예인 시구로 가장 유명한 구단은 두산. 2005년 배우 홍수아가 '선수급' 시구로 화제를 모은 후 수많은 스타들이 두산 마운드를 거쳤다. 두산 관계자는 "지금은 입장이 바뀌어 연예기획사에서 먼저 연락이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구에 돈이 오가지는 않지만 소녀시대 등 최고인기 연예인이 마운드에 오를 경우 짭짤한 입장수입으로 이어진다. 지방구단의 경우는 아직도 지방자치단체 고위인사들의 시구문의가 빗발쳐 구단직원들이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포스트시즌 시구는 조금 다르다. 유명인 중에서도 그 구단의 골수 팬만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 플레이오프 1차전 시구는 LG의 10년 팬인 배우 안재욱, 3차전 시구는 두산 팬인 배우 이서진이 맡았다. 한국시리즈 시구자는 구단이 아닌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선정한다.
◇직관하는 회장님='직관'. 스포츠 팬들이 널리 쓰는 '직접 관전'의 줄임말이다. 가을야구는 '회장님'도 직관한다. 이번 한국시리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직관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에도 SK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을 직관했다.
정규시즌에도 10경기 이상을 직관한 박 회장은 준플레이오프 3ㆍ4차전과 플레이오프 1ㆍ3ㆍ4차전을 직관했다. 이 5경기를 두산은 전부 이겼다. 박 회장은 특히 VIP석이 아닌 내야석을 고집한다. "팬들과 같이 호흡하는 게 좋다"는 것이 이유. 박 회장이 앉는 자리는 잠실구장 내야의 '블루지정석'으로 포스트시즌 때는 4만~5만원에 팔린다.
◇하늘의 별 따기 '티켓 전쟁'=포스트시즌 입장권은 정규시즌 입장권보다 3~4배나 비싸다. 그럼에도 티켓예매는 창구가 열림과 동시에 매진이다. 선수를 지인으로 두고 있어도 어렵다. 선수들이 구단을 통해 구매 가능한 한도는 1명당 4장뿐. 단 선발투수는 등판 당일 입장권을 최대 30장까지 살 수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선발투수는 그날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다. 지인들의 현장응원으로 기를 받게 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시리즈에 출전하는 한 선수는 아예 휴대폰 메신저 창에 '표 없음!!'이라고 못박아뒀다. 그 정도로 티켓 부탁에 시달린다는 얘기다.
◇가을야구 보너스 '머니게임'=돈 얘기는 가을야구를 한층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다. 한국시리즈 우승팀에 돌아가는 보너스는 보통 30억원 안팎. KBO는 포스트시즌 전체 입장수입에서 35~40%를 경비로 쓰고 나머지를 4강팀에 나눠준다. 정규시즌 우승팀에 20%를 준 뒤 나머지 금액의 50%를 한국시리즈 우승팀, 25%를 준우승팀에 배분하는 식이다.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면 15%, 준플레이오프 탈락팀은 10%순이다. 지난해 정규시즌 우승에 이어 한국시리즈도 제패한 삼성은 37억3,000만원을 챙겼다.
이렇게 얻은 보너스는 전액 선수단에 돌아간다. 금액은 기여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최고활약을 펼친 선수는 한번에 1억원이 넘는 보너스를 챙기기도 한다. 선수단 연봉고과 때 포스트시즌 성적을 포함하지 않고 정규시즌 성적만 기준으로 하는 것도 포스트시즌 보너스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구단에 따라 다르지만 일부 구단은 직원들에게도 별도의 보너스를 준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한국시리즈 우승 때 구단직원들에게 연봉의 50%를 우승 보너스로 지급한다.
◇'여심(女心)'이 야심(野心)=프로야구에 여성 팬이 늘어난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이번 포스트시즌은 특히 눈에 띈다. LG가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자 여성관중 사이에서는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구체적인 집계는 하지 않지만 두산은 올 시즌 관중 성비(性比)에서 6대4로 여성이 역전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과거에는 남녀 데이트족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요즘은 여성들끼리만 찾는 경우도 많아졌다. 넥센 팬이라는 한 20대 여성 팬은 "처음에는 잘생긴 선수들을 보러 야구장에 갔는데 지금은 경기자체가 재미있어서 간다"며 "복잡한 야구 룰을 주변에 물어본 뒤 눈으로 확인하며 배워가는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2009년부터 '퀸스데이' 행사(매달 특정일 여성관중 2,000원 할인)를 진행해온 두산 마케팅팀 관계자는 "여성관중은 한번 야구장을 오더라도 유니폼ㆍ액세서리 등을 완벽하게 갖추기를 원한다"며 "여성 팬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마케팅에 신경 쓰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