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 CEO]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30년 내공'으로 건설업계 발전 디딤돌
"눈앞 이익보다 직원 행복 먼저"… 워크아웃 때도 처우 개선 고집


김석준(가운데) 쌍용건설 회장이 임직원들과 함께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쌍용건설

'주인의식을 가진 전문경영인' 김석준 회장(58ㆍ사진)은 지난 1983년부터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쌍용건설을 대표하고 있는 '얼굴'이다. 김 회장은 창업주인 고(故) 김성곤 회장의 차남으로 1983년 서른살의 나이에 쌍용건설 사장의 자리에 올랐다. 수주 실적이 기반이 되는 건설업계에서 쌍용건설이라는 신생기업을 창립 15년 만에 업계 시공순위 7위로까지 성장시키는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 하지만 기업의 성장에는 흥(興)과 망(亡)이 있는 법. 1998년 외환위기가 닥치며 쌍용그룹이 해체됐고, 김 회장도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하지만 임직원들은 김 회장의 경영 능력과 리더십을 여전히 필요로 했다. 직원들의 요청으로 그는 다시 쌍용건설로 돌아온다. 신분은 전문경영인이었다. '오너' 출신 최고경영자(CEO) 김석준 회장에게는 다른 전문경영자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남다른 '주인의식'이 엿보인다. 사람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경영철학, 눈앞의 이익보다 장기적인 발전을 모색하는 태도,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 등을 보노라면 김 회장이 여전히 기업의 오너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특히 임직원들에 대한 김 회장의 애정과 책임감은 업계에서도 유명하다. 그의 의사결정과 판단 과정에는 항상 '회사의 이익'과 '직원들의 행복'이 우선순위로 작용한다. 워크아웃을 진행하며 쌍용건설의 정상화를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김 회장이지만 '직원들의 처우'에 관한 부분에서는 채권단에 맞서 싸울 정도로 뚝심이 있었다. 2003년 유상증자 과정에서 직원들이 퇴직금을 털어 주식을 사들이자 본인이 갖고 있던 쌍용건설 지분 24.7%(736만주)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직원들에게 넘기기도 했다. '백의종군하겠다'며 한때 대표이사직을 스스로 내놓기도 한 김 회장에 대한 쌍용건설 직원들의 신뢰는 그야말로 절대적인 수준이다. 쌍용건설 임직원들이 종업원 매수를 통한 종업원지주회사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것도 김석준 회장이라는 '큰 기둥'이 있기에 가능하다는게 업계의 중론이다. 김석준 회장의 경영실력과 자질에 대해선 이미 수차례 검증된바 있다. 30년 가까이 건설업에 몸담아온 '건설통' 김 회장은 쌍용건설의 수장을 맡으며 회사를 전세계 19개국에서 135건, 미화 81억 달러가 넘는 실적을 보유한 '해외건설 명가(名家)'로 키워왔다. . 1980년대 초반 세계 최고층 호텔로 기네스북에 오른바 있는 73층 호텔을 포함한 싱가포르 래플즈시티 프로젝트를 직접 진두지휘했으며, 1991년 부산항 컨테이너 부두 공사를 통해 건설 시공부문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1983년 사장직에 오를 당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고 조정구 삼부토건 명예회장 등 건설업계 1세대들 사이에서 막내 역할을 하던 김 회장은 이제 후배경영인들을 이끌고 있는 업계 맏형 반열에 올랐다. 김 회장은 "국내 건설 시장이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고 있지만 해외 시장에는 언제나 도전의 기회가 있다. 밸류 엔지니어링, 프리 컨스트럭션 등의 역량를 강화해 단순 시공에서 벗어나 발주처의 다양한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획 수주 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건설업계 전체가 나아갈 방향과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He is ▦1953년 대구 ▦대광고 ▦고려대 경영학과 ▦㈜쌍용 기획조정실 ▦쌍용건설 이사 ▦쌍용건설 사장 ▦쌍용자동차 회장 ▦쌍용양회 회장 ▦쌍용그룹 부회장 ▦쌍용건설 회장
전세계 누비며 해외수주 '키맨' 역할 톡톡

●金회장의 현장경영 김석준 회장은 전형적인 현장형 최고경영자(CEO)로 꼽힌다. 그의 진가는 해외 현장에서 잘 드러난다. '레드카펫 깔아 놓고 부르지 마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김 회장은 실제 쌍용건설이 대규모 해외 공사를 수주하는데 실질적인 '키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특히 쌍용건설이 지난 2007년 1조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공사를 수주할 수 있었던 데에는 회사의 뛰어난 시공실적과 기술력 외에도 김 회장의 발로 뛰는 노력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입찰을 준비하던 2006년 11월, 김 회장은 각별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던 에드먼드 챙 윙타이 그룹 부회장의 소개로 프로젝트의 핵심 의사결정권자인 조지 타나시제비치 마리나 베이 샌즈사 싱가포르 법인장과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평소에도 항상 회사 홍보용 책자를 지니고 다니던 김 회장은 이 자리에서 브로슈어를 펼쳐 보이며 즉석 프리젠테이션에 들어갔고, 쌍용건설의 다양한 해외 실적과 싱가포르의 활약상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그의 모습은 상대에게 깊은 인상을 주게 됐다. 이후로도 해외 출장시에는 반드시 싱가포르를 들러 발주처 인사를 찾은 김 회장은 상대의 신뢰를 얻는데 성공했고 2008년 5월부터 6차례에 걸친 가격 제출, 25회의 실무 미팅을 전두지휘, 발주처의 까다로운 요구를 완벽하게 충족시켰다. 홍콩의 개몬, 일본의 시미즈 등 세계 유수 건설사를 누르고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건축물의 시공자가 된 것이다. 2008년 7월에는 대규모 도심인프라 공사 발주와 관련해 쌍용건설을 방문한 싱가포르 육상교통청장 관계자들에게 당시 시공중이던 서울지하철9호선 고속터미널역의 각종 첨단 공법에 대해 직접 프리젠테이션하는 열의를 보였다. 회장이 직접 2009년 육상교통청이 진행하는 1일 안전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들은 ▦8,200억원 규모의 싱가포르 '마리나 해안 고속도로 482공구' 공사 ▦7,000억원 규모의 싱가포르 도심 지하철 2단계 사업 921공구 수주로 연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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