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조치훈.조훈현 "세대교체는 없다"

한때 슬럼프에 빠졌던 조치훈9단과 조훈현9단이 화려한 비상을 거듭하고 있다. 일본에서 활약중인 조치훈은 일부의 「쇠퇴론」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 21일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9단의 도전을 뿌리치고 일본 랭킹 2위 기전인 메이진(名人) 방어에 성공했다. 조훈현도 KBS바둑왕전과 배달왕기전 결승에 진출했다.조훈현과 조치훈은 공통점이 여러가지가 있다. 먼저 40대 중반의 나이. 각각 46세, 43세이다. 이미 20대에 각각 한국과 일본에서 최정상으로 군림했다는 점도 똑같다. 그러나 요즘 들어선 『한물가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비판마저 같이 듣고 있다. 성적이 저조해서가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 실착이 나오기 때문이다. 전성기에는 볼 수 없던 현상이다. 예를들어 지난 7월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열렸던 혼인보(本因坊)전 도전7번기 제6국. 조치훈은 시종일관 국면을 리드했으나 수읽기에서 착각을 범해 대마가 몰사하고 말았다. 결국 도전자인 조선진9단에게 우승상금 2,000만엔을 넘겨주었고 「단일 타이틀 11연패」, 「4년 연속 대삼관」이라는 기록갱신도 무너졌다. 조훈현도 마찬가지다. 지난 9월9일 그는 창하오(常昊)9단과 삼성화재배 8강 진출이 결정되는 중요한 대국을 벌이다 막판 실착으로 무려 15집 이상의 손해를 봤다. 결국 흑으로 1집반패. 물론 아무리 정상급 기사라도 실수는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점. 바둑계 인사들은 두 사람의 부진을 40대 중반의 나이에서 오는 체력 저하와 집중력 감퇴, 수많은 대국으로 전력이 노출됐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조선진은 자신의 혼인보 우승 요인으로 『(상대였던 조치훈의) 체력이 떨어진 탓이다. 10년간 피말리는 도전기를 두다보니 피로가 많이 쌓인 것같다. 그게 마지막의 집중력 하락으로 나타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듯 요즘 전성기의 기량으로 세간의 입방아를 말끔히 씻어내고 있다. 우선 조치훈은 「이틀 대국」에 강한 자신의 특기를 살려 제24기 일본 메이진전에서 요다 노리모토9단을 눌렀다. 20·21일 도전7번기 제5국에서 요다는 7시간59분을 모두 쓰고 초읽기에 몰리면서도 투지를 불태웠으나 조치훈의 벽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종합전적은 4대1로 조치훈의 압도적인 우세. 또 그는 일본 왕좌전 타이틀 획득에도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 25일 도쿄에서 벌어진 제1국에서 흑을 쥔 도전자 조치훈9단은 281수만에 왕리청(王立誠)9단에게 4집반을 이겼다. 이밖에 조치훈은 내년 1월 일본 랭킹 1위인 기세이(棋聖)전에서 역시 왕리청과 타이틀 방어전을 치를 예정이다. 조훈현도 요즘 원기를 회복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는 21일 제7기 배달왕기전 도전자결정전 2국에서 김영환5단을 꺾고 도전권을 쟁취했다. 뿐만아니라 19일에는 이상훈2단을 누르고 제18기 KBS바둑왕전 결승에 진출했다. 성적도 좋다. 지난 9월 바둑왕전에서 유창혁9단을 이긴 이래 11연승을 기록하고 있다. 「왜 이렇게 성적이 좋아졌을까」라는 물음은 우문(愚問)으로 들린다. 『바둑에도 리듬이 있다. 성적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조훈현의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바둑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노련함과 끈길진 투혼으로 국면을 전환시키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는 게 아니다. 중국의 녜웨이핑( 衛平)9단은 지난 89년 응씨배 결승에서 조훈현에게 꺾인 뒤 추락일로의 내리막길로 굴러떨어졌다. 신예기사들이 이들의 벽을 넘지못하는 이상 「세대교체」란 요원한 일로 보인다. 최형욱 기자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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