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작품 없다" "팔 곳 없다" 미스매치 … 우선 거래채널 활성화를

[창조경제의 심장 스토리를 키워라] <중> 엇갈리는 수요·공급
사고파는 공개 시장 미흡 제작자·창작자 모두 불만
대부분 인맥에 의존 거래 스토리의 다양성 부족해져
분쟁땐 개인단위 대응 일쑤 저작권등 보호장치도 필요

지난해 11월20일 정부와 업계 인사들의 현장 간담회를 시작으로 이야기산업 진흥방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유진룡(윗줄 오른쪽 세번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야기산업계 종사자 및 전문가들의 표정이 심각하다. /사진제공=문화체육관광부


9,650억원과 1,850만원. 각각 영국 작가 조앤 K 롤링이 '해리 포터' 시리즈로 올린 '대박'과 우리나라 동화작가 백희나가 '구름빵' 창작으로 받은 '푼돈'이다. 엄마가 구름으로 만들어준 빵을 먹고 하늘을 날게 된 아이들의 생활 속 모험을 그린 그림동화 '구름빵'은 지난 2004년 단행본으로 처음 나온 뒤 50만부 이상이 팔렸고 이를 애니메이션과 뮤지컬로 옮긴 작품까지 인기를 끌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강원창작개발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구름빵'의 캐릭터 인형을 선물 받고 "창조경제의 대표적 성공사례"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원작자인 백씨는 고작 1,850만원을 벌었다. 백씨가 신인시절인 2003년 출판사와 모든 저작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맺은 850만원짜리 '매절계약' 때문이다. 보통 영화ㆍ연극 등 2차 콘텐츠가 나오면 새 계약을 체결하지만 처음의 매절계약은 이를 원천 봉쇄했다. 책이 불티나게 팔리자 이 출판사는 백씨에게 1,000만원을 더 주긴 했다. 하지만 책값의 10%를 인세로 받는 보통의 저작권 계약이었다면 백씨는 인세수입만으로도 3억원 이상을 벌었을 것이다. 반면 롤링은 처음부터 정상적인 계약을 했기 때문에 작품 성공으로 대박이 날 수 있었다.

◇수요공급의 미스매치=우리나라 이야기(스토리) 산업의 현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스매치다. 수요자인 영화ㆍ출판ㆍ드라마ㆍ게임 등 콘텐츠 제작자는 "좋은 이야기가 없다"고 푸념하는 반면 공급자인 이야기 창작자는 "내 이야기를 팔 곳이 없다"고 외친다.

이른바 '형님 비즈니스'가 가장 일반적인 곳이 이야기 거래 분야다. 사고파는 공개된 시장이 없다 보니 창작된 이야기는 대부분 알음알음 지인들을 통해 거래된다. 거래는 이야기 창작자가 아는 영화 제작자나 방송사·출판사 등에 이야기를 들고 가 이뤄지고 불발될 경우 그냥 사장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이야기 창작자 25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야기 창작자가 작품을 공개하는 통로는 '평소에 알던 프로듀서ㆍ감독 등'이 30.3%로 가장 많았고 '프로덕션ㆍ출판사 등 기업' 27.6%, '공공ㆍ민간의 공모전' 27.6%, 연재 사이트 5.5%순이었다. 부정기적인 공모전 외에는 마땅한 이야기 거래 채널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인맥을 통한 이야기 거래는 갑을관계를 만들고, 특히 백씨의 경우처럼 신인작가들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계약조건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또 한정된 창작자 풀로만 움직이면서 스토리의 다양성이 부족하고 잘되는 스토리만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

이런 불합리한 유통과정은 이야기 산업의 토대를 갉아먹고 있다. 2012년 전문계 고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모든 졸업자 중 저작물 창작 배출인원은 19만7,000명이고 이 가운데 이야기를 창작할 수 있는 어문ㆍ영상·연극학과 졸업생은 5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물론 이들이 모두 실제 이야기 창작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아니지만 적지않은 인력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조사 결과 이들 이야기 창작자의 연평균 수입은 1,618만원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이야기 창작 외에 소득이 없는 전업작가의 비율이 35.2%, 창작 외 분야의 직업을 가진 경우가 20%였다. 애로사항을 조사한 결과 '생계유지의 어려움'이 68.3%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영화화된 소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을 비롯해 '궁극의 아이' 등을 쓴 장용민 작가는 "감독이나 제작자에 비해서는 개인으로서의 작가가 절대적인 열세에 있다"며 "쉽게 말해 먹고 살기 힘든 것이 제일 문제"라고 말했다.

◇이야기 보호장치 필요=이야기 산업은 특성상 이야기 창작과정 중 법률논쟁이 빈번히 일어난다. 표절이냐 아니냐, 저작권을 누가 얼마만큼 가질 것인가 하는 논쟁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이야기 창작자의 경우 이를 논의할 수 있는 적절한 통로가 없다.

관련 법률 문제 발생시 해결방법으로는 '경험 있는 업계 선배의 도움'이 49.0%로 거의 절반이었고 '혼자 대응'도 35.9%나 됐다. '법조계 지인의 도움'은 4.1%, '별도의 법률자문'은 3.4%에 불과했다. '경험 있다'는 업계 선배도 역시 개인인 점을 감안할 때 결과적으로 대부분이 개인단위로 대응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백씨의 경우처럼 창작자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셈이다. 백씨의 경우 '구름빵' 출판계약시 사기를 당했다거나 궁박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한다. 정상적 판단에 따라 도장을 찍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때 받은 850만원은 책 1만부 판매분에 해당하는데 보통 1만부를 판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저자 또한 상업적 성공을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계약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개인적 판단은 결국 창작자 입장에서 터무니없는 결과를 냈다. 만약 전문적인 법률 조언을 받을 수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해리 포터'의 작가 롤링은 신인임에도 영국에 일반적인 '에이전시'라는 대리회사를 매개로 출판사와 계약했다. 그렇기 때문에 매출분에 대한 온전한 몫을 챙길 수 있었고 결국 1조원에 가까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반이 됐다.

현상황에서 우리나라 5,000년 역사의 무궁한 아이디어 소재가 이야기로 완성돼 나오기를 바라기는 어렵다. 제도적인 이야기 창작자 보호, '이야기 거래소' 확대 등을 통해 창작자의 창작의욕을 북돋우고 결과적으로 콘텐츠 기업들도 이들을 활용할 수 있는, 선순환하는 이야기 산업 생태계 마련이 절실함을 알 수 있다.

조정욱 법무법인 강호 변호사는 "콘텐츠 관련 법률로서는 이미 저작권법ㆍ공정거래법 등이 있지만 콘텐츠 산업의 원천소재로서의 '이야기'는 현재의 법률로 보호하기 힘들다"며 "새로운 이야기 산업 진흥법이 필요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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