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과학 vs 영성 두 세계의 빅매치

■ 세계관의 전쟁(디팩 초프라ㆍ레너드 믈로디노프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이론물리학자 디팩 초프라 영성철학자 레너드 믈로디노프
우주 탄생·생명·마음과 뇌·신 등 인류 기원에 대해 날선 공방

왼쪽부터 디팩 초프라, 레너드 믈로디노프


창조론, 혹은 지적설계론(탐구 대상의 기원이 의도에 의한 설계인지 의도가 없는 자연 발생인지를 밝히는 것으로 의도적 존재라면 의도적 요소인 '디자인'이 있는지 찾는 것)이 사람들의 말문을 막는 논리는 간단하다. 세상 모든 것이 과학과 진화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면, 시간을 거슬러 모든 것이 시작되는 그 시점에 존재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는 얘기다. 아무리 첨단 기술로 쪼개고 쪼개도 마지막으로 남는 그 '겨우 존재하는 것'의 기원을, 그 정교한 무엇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지만 진화론 진영의 논리도 힘이 세다. 어느 날 모든 것의 시발점이 되는 존재가 '짠' 하고 나타났다면, 그 존재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것'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설명하겠느냐는 것. 기독교 식으로 세상이 창조됐다는 것이 터무니없다는 주장이다.

이 책은 그런 얘기다. 언뜻 보기에는 이론물리학자와 대체의학자라는, 나름 과학적인 바탕으로 연결되는 두 사람이 논쟁을 주고 받는다. 하지만 속살은 다르다. 이 대체의학자의 또 다른 면모가 '영성철학자'이기 때문이다. 과학자 레너드 믈로디노프와 영성철학자 디팩 초프라는 이 책에서 크게 우주, 생명, 마음과 뇌, 신 이라는 네 가지 주제, 그리고 다시 너댓가지 세부적인 논쟁거리를 두고 거세게 부딪힌다.

우선 레너드는 세계가 빅뱅 이후 자연선택에 의해 형성돼 왔고, 마음은 뇌의 지배를 받으며 철저히 이성적ㆍ객관적인 방식으로 우주와 생명을 분석해야 한다고 본다. 관습적으로 인정해온 것들이 반드시 참은 아니라며, 창조론 같은 생각을 뒷받침할 근거를 대라고 공격한다. 특히 우주가 무(無)에서 생겨났음을 주장하는 쪽의 '진공요동' 개념을 소개하며, 합리적 근거 없는 미신이나 신비주의적인 입장을 비판한다.

"자연이 줄기세포가 든 비커를 흔들고 외출했다가 돌아 오니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있다는 말을, 과학은 하지 않는다. 과학이 하는 말은, 자연이 1조 곱하기 10억개의 항성계들에 물질을 보내 137억년 동안 숙성시킨 다음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디팩은 우주를 창조한 존재를 확신하며, 생명은 그 모든 물리적 과정 너머의 초월적 영역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과학이 포착한 만물의 물리적 속성은 본질이 아닌 현상에 불과하며, 궁극적으로는 영성 진영에서 말하는 '지고의 가치'가 자리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디팩이 기성 종교조직에 손을 들어줄 마음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영성은 교조적인 성격의 신앙보다 합리적인 이성에 기반한 과학에 더 가깝다고 주장할 정도다.

그는 방금 인용한 레너드의 주장에 이렇게 답한다. "완전한 혼돈에서 시작해 지구상 생명에 까지 이르기는 매우 힘들다. 줄기세포들이 담긴 비커를 흔들어놓고 외출했다가 돌아와보니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있음을 보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창조를 쪼개고 쪼개서 도달하는 무엇으로 설명하기 보다 창조가 이룬 바를 가지고 설명해야 하지 않겠는가?"

육면체의 닿을 수 없는 두 선분처럼 다른 곳을 향해 달려가는 두 사람이지만, 시종일관 계속되는 양보 없는 논쟁 속에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접점을 모색하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다. 단지 상대를 해치고야 마는 감정 싸움이 아닌 진지하고 발전적인 대화를, 존경 받아 마땅한 이 나라 윗 분들에게서 본 것이 언제였나 싶다. 1만8,000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