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돈이 갈 곳을 만들어야 한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


일본 도쿄 지역 신축 아파트 평균 가격은 지난 1988년 한 해에만 무려 32%나 상승했다. 1990년 평균 가격이 6,100만엔을 넘던 아파트는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불과 5년 만에 4,100만엔대로 하락했다.

부동산 버블 붕괴 등 日 전철 우려

일본에서 부동산 버블이 생긴 근본적인 이유는 경기회복을 위해 정부가 돈을 풀었고 가계와 기업들은 너도나도 대출을 통해 투자를 확대했지만 국내에 투자할 만한 생산적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모든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렸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국토 균형발전정책을 펴자 부동산 버블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확대됐다. 이뿐 아니라 부동산 가치가 엄청나게 상승하자 기업과 가계는 부동산을 담보로 더 많은 돈을 대출해 부동산에 다시 투자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부동산 버블이 과도하게 확대되자 집 없는 서민들의 생활이 팍팍해졌고 일본 정부는 기준금리를 1년3개월 만에 2.5%에서 6.0%까지 급격히 올렸다. 또한 부동산대출에 대해 대출총량규제를 실시해 브레이크 없이 달리던 부동산시장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자 드디어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어떤 정책도 부동산 버블과 함께 가라앉는 경제를 바로 세울 수 없었다.

최근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이 다시 살아나는 모양새다. 서울시의 올 1·4분기 주택거래량이 4만3,000건을 넘어 2006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아파트뿐만 아니라 다세대·연립, 단독·다가구 모두 거래량이 크게 늘었다. 그 이유야 어쨌든 주택시장에 온기가 도는 것은 사실인데 따뜻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1990년대 초반 일본의 부동산 버블이 연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기 이전 연평균 6.2%씩 성장하던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지금까지 평균 1.2% 성장에 그쳤고 물가는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하락해 20년 평균 물가상승률이 0.1%에 불과하다. 젊은이들은 미래를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살아가고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240%를 넘어 정부도 미래를 약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 우리 경제의 상황은 또 어떤가. 한국은행이 성장률 전망치를 3.1%로 하향 조정했고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달 기준금리를 낮춰 식어가는 경제에 돈을 더 풀기 시작했지만 효과는 불확실하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난항을 겪고 있고 노동시장 개혁에 대한 노사정대타협도 불발에 그쳤다. 정부는 소위 4대 부문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체질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매듭을 잘 풀어낼지 미지수다.

국회서 규제개혁 등 박차 가해야

이처럼 암울할수록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돈이 갈 수 있는 생산적인 곳을 만들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일본처럼 저성장의 늪에 빠진다면 국민은 추진력이 부족한 정부와 국민 설득에 실패한 여당, 그리고 정치적 논리로 경제활성화 법안과 규제개혁의 발목을 잡아온 야당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간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각종 경제활성화 법안들이 빛을 봐야 한다. 또한 4대 부문 개혁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올봄 국회에 마지막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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