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 계열사들이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을 회피하고 줄줄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택하면서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등 이른바 '시장성 차입' 비중이 높은 기업에 대한 경계령이 내려졌다. 동양사태에서 보듯 주채무계열에서 벗어나 있거나 시장성 차입 비중이 큰 기업이 한번 흔들리면 감독당국과 채권단은 책임회피에 급급하거나 기존 여신을 회수하는 등 통제장치가 사실상 실종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성 차입이 높은 부실기업을 구조조정할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얘기다.
특히 조선ㆍ해운ㆍ건설 등 향후 부실 우려가 높은 기업들의 시장성 차입 비중이 높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제2의 동양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구조조정을 선제적으로 주도할 별도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3일 금융당국과 금융계에 따르면 최근 ㈜동양ㆍ레저ㆍ인터내셔널ㆍ네트웍스ㆍ시멘트 등 동양 계열사들이 줄줄이 법정관리를 택했지만 이 과정에서 선제적 구조조정을 유도해야 할 감독당국과 채권단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당국은 주채무계열 대상 기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채권단은 여신이 적다는 이유로 사실상 사태를 관망하면서 구조조정을 진두 지휘할 컨트롤타워가 사라진 것이다.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가 지난 1일 기습적으로 법정관리행을 결정한 것은 컨트롤타워에 구멍이 났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핵심 계열사이자 비교적 우량한 두 계열사는 그동안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 등 채권단 공동관리가 점쳐졌다. 하지만 당국과 채권단은 두 계열사의 법정관리행이 결정된 후에야 알 정도로 우왕좌왕했다. 결국 피해는 이들 기업의 회사채와 CP을 들고 있는 개인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는 앞으로 부실 가능성이 높은 기업의 구조조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부터 시장성 차입 비중이 높은 기업 중 재무구조가 나쁜 몇몇 기업이 '제2의 동양'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동양 같은 유형의 부실기업을 구조조정할 컨트롤타워가 전무한 현 상황에서는 기업이 한번 부실에 빠지면 곧바로 법원으로 향하는 일이 고착될 수 있으며 CP 불완전판매 등 잠복한 문제가 또다시 터져 나올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