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혼노지에 있다』 일본의 속담이다. 전국시대를 주름잡던 오다 노부나가가 강적 모리룰 토벌하기 위해 교토의 본능사에 숙박했다가 자신의 부장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피살되는 사건이다. 진짜 적은 모리가 아니라 뜻밖에도 본능사에 있었다는 의미로, 불의의 타격을 입었을때 일본인들이 곧잘 쓰는 말이다.이 본능사의 변이 나에겐 그러나 임진왜란의 단초로 여겨진다. 이 사건으로 노부나가가 죽지 않았던들 임진왜란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으로 지금도 믿고 있다. 한갓 가설에 불과하지만 그렇게 믿는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우선 본능사의 변이 터진 시점이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0년전인 1582년이라는점, 그리고 변이 터진후 진행되는 일련의 상황를 보건데 누가봐도 임진왜란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본능사의 변이 터질 당시 노부나가의 또다른 무장 하시바 히데요시역시 모리 군과 대치중이었다. 하시바는 그러나 노부나가가 살해됐다는 소식을 듣자 모리 군과 화의를 맺고 회군한다. 주군이 죽고 정확히 12일만의 일이다. 회군하자 마자 그는 노부나가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후사 결정에서부터 장례식까지를 자신의 주도하에 치르게 된다. 이 하시바가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도요토미라는 성은 전국시대를 수습한후 천황에게 하사받은 성씨다. 도 토미는 그러나 영주격인 다이묘출신이 아니고 자수성가 했던 인물이므로 강력하고도 믿을 만한 직할군이 없었기에 조선침략을 자신의 직할군 편성의 기회로 여긴다. 또 전국시대의 전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몰락한 다이묘와 사무라이들을 처치하기 위해서도 조선정벌은 필요했다. 이 모든 과정 절차가 알고보면 본능사의 변이 초래한 업이다.
이렇게 해서 도요토미는 1592년 4월 부산에 공격군 제 1진을 상륙시킨다. 동원된 총병력은 16만, 총사령부는 나고야에 뒀다. 이 대목에 이르면 이번에는 가설이 아닌, 몇가지 무시할 수 없는 사실과 만나게 된다. 조선 침략 그 자체는 도요토미의 성깔과 모험심이 유발한 과대망상적인 도발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당시 그가 바깥 세상을 내다보던 수준 하나만은 가히 수재급이었다는 점이 그 첫째다.
조선침공 한해 전 그는 포르투갈령의 인도 고어 총독에게 조공을 바칠것을 요구했고 임진란이 진행중인 1593년에는 필리핀의 루손도와 타이완에도 역시 조공을 요구, 불응할 경우 군사적으로 정복하겠다고 협박할 정도였다. 당시 조선 왕조 지도자들의 국제감각이 어땠는지는 타이완 필리핀은 고사하고 우선 당장 전쟁준비에 광분한 이웃 일본을 다녀 온 두 수신사들의 보고가 상이했던 것만 봐도 더 이상 설명할 생각이 사그러 든다. 싸움을 거는 측과 당하는 측의 지각이 그 정도로 차이나 있었다. 싸움의 승패는 보나마나 뻔했다. 바깥 정세에 대한 우리의 무지는 역사적으로 하나의 업이다.
임란시 또하나 무시 못할 사실은 당시 왜군에게 기본화기로 지급된 조총의 위력이다. 이 위력이 사실보다 과소 평가돼 문제다. 임란이 발생하기 50년전 포르투갈로부터 전해진 조총은 그 후 개발이 거듭되다 일본의 전국시대를 마감시키는데 결정적 무기가 된다. 특히 나가시노 싸움(1575년)과 세키가하라싸움(1600)은 조총을 가진 보병부대가 활이나 칼, 창 등을 지닌 기존의 기병대를 깨부순 대표적인 싸움으로 임진·정유양란은 그런 의미에서 왜측에는 조총의 위력을 재확인하는 전쟁이었다. 조선군의 참패는 이미 예정돼 있던 수순이었다. 당시 진주성이나 행주대첩 등 지엽적인 승리를들어 유리한 전황으로 호도함은 올바른 역사교육이 못된다. 진 싸움은 진 것으로, 대신 싸움에 진 이유를 정확히 알려줌이 옳다.
그러나 바로 그런 전쟁이었다는 점이 바로 한 역설적인 인물의 등장을 더 극적으로 장식해 준다. 이순신이다. 당시 조정 지도자들의 무딘 국제감각과 당파논쟁, 조총에 눌려 온 열악한 전세까지도 이순신의 등장 하나로 모두 용납되는 사안으로 바뀐다. 왜군의 해상활동이 완전 봉쇄됐고 도요토미가 직접 조선에 발을 들여놓려던 계획도 취소됐다. 또 왜군들은 전라도땅에 한 발도 들여놓지 못했다. 이순신의 전과를 그러나 이 처럼 해상에서 거둔 몇차례의 대첩으로 국한함은 평면적인 평가가 된다. 고함석헌씨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이순신을 하나님이 점지해준 인물로 그린 뜻이 와 닿는다. 국난을 대비해 남겨둔 「남은자(REMNANTS)」라는 뜻일 듯 싶다. 이순신이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됐다. 금년은 또 그가 장렬하게 전사한지 만 4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도요토미는 같은해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