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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가 주문하는 음료
차를 이야기하지만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건 커피입니다. 말은 차 한 잔 하자고 하면서도 마시는 것은 커피인 경우가 많습니다. 전통적인 차(茶) 이외에 생강차나 대추차 같은 대용차도 차보다는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하곤 합니다. 국내 커피 판매액이 조(兆)를 넘어설 정도이니, 차 계열 음료 시장에서 대세는 대세입니다.
커피는 전 세계적인 기호음료라 할 만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지고, 다시 미국으로 전해지면서 세계적인 음료가 됐는데요. 커피 역시 그 기원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각광을 받은 이유에 각성(覺醒)이라는 역할이 있었음은 분명합니다. 시작이 그랬고, 아라비아와 유럽에 전해질 때도 그랬죠. 잠을 쫓을 수 있었다는 건데요.
차의 나라라고 하는 현대 중국사회는 어떨까요. 탄산음료와 더불어 커피의 유행 속도는 놀랄 만합니다. 카페라는 공간도 그 유행 속도에 맞추어 빠르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고요. 보이차의 고향이라는 윈난에서도 커피농장을 대단위로 조성하고, 이름마저도 ‘커피의 고향’이라고 부르면서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대도시를 비롯해 지방 도시에서도 커피 체인점이 확산될 뿐 아니라, 카페는 차츰 젊은 층에게 정보와 의견을 나누는 열린 공간이자 휴식 공간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국의 차 생산량은 지난해 기준 210만 톤 정도로 세계 제일이고, 특히 최근 중국 내 스타벅스는 메뉴 구성에서 커피를 줄이고 전통적인 차 메뉴 비중을 높여 가고 있습니다. 코카콜라도 미국 남부지역에 거대한 차(茶)농원을 조성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요.
차는 그 역사가 수 천 년이 되고, 생산지가 아닌 소비지인 유럽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차가 커피보다 먼저 유행했었죠. 그리고 300여 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커피는 기호음료를 대표하게 됐고, 이제 차는 다시 커피를 대신할 새로운 음료로 재출발하는 양상입니다. 커피와 콜라를 생산하고 유통하던 대형 업체들이 차를 주목하고 있는 것도 그런 흐름의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생활패턴이 달라지고 있다는 거죠!
#차에서 커피로 간 사연
지금은 커피가 전 세계를 대표하지만, 동양의 차도 한 때는 전 유럽을 감동시켰습니다. 17세기 초 동양의 차는 도자기와 함께 유럽에 전파되고,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국민 음료로 자리잡았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사교 음료로도 유행하게 됩니다. 향기가 좋고 무엇보다 몸에 좋았기 때문인데요.
영국 같은 경우, 습하고 더운 조건에서 중국 푸젠성(福建省)의 홍차는 국민차로 유행했었죠. 특히 푸젠 우이산(武夷山)의 홍차는 몸을 데워주어 습열(濕熱) 조건을 이겨내는 데 효과 만점이었고, 거기에 천연의 레몬 향과 달콤한 우유 맛까지 더해졌으니, 유럽인에게 음료의 신세계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영국정부는 금주령을 내리고 홍차를 대대적으로 권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럽은 부담이 커집니다. 차와 도자기를 수입하느라 재정 부담도 커지고, 해상무역권을 둘러싼 경쟁도 치열해졌던 것입니다. 결국 대안을 모색하게 되었죠. 수입되던 중국 자기(瓷器)는 숱한 시행착오 끝에 유럽에서 자체 제작되었고, 차도 중국이 아닌 인도나 스리랑카에서 재배·수입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커피가 그 자리를 나눠가지게 되었던 것이죠. 미국에서는 유럽 본토에서 정한 무리한 차 관세에 저항했고, 대체 음료로 아메리카 식 커피가 유행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땠을까요. 상황이 좀 달랐습니다. 차는 차대로 귀했고, 커피는 외래문화의 선봉이 되어 우리 입맛을 중독시켜 나갔습니다. 며칠 전이 광복절이었는데요. 곡절 많은 우리 근현대사만큼이나,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 마실 거리도 그만한 곡절이 없을 리 없었겠죠.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암살’이라는 영화는 지독한 절망적 상황을 배경으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국내 차 산업이 완전하게 일본식으로 편입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죠. 남쪽에는 일본회사에 의해 차 밭이 조성돼 일본식 차에 어울리는 차나무가 재배되었고, 그 뒤 1940년대 들어서서는 여자고등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일본식 차도(茶道)를 배우게 되었던 것이죠.
커피도 일부 사교층을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했고요. 외국인 선교사와 상인들에 의해 ‘양탕(洋湯)’이라 불리며 팔리기 시작했다는 커피! 1919년부터 일본인에 의해 명동과 종로, 충무로 일대에서 다방이 유행하기 시작했죠. 물론 커피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이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인스턴트 커피 때문이었고요. 커피는 이후 수입 금지와 제한 과정을 거치게 되지만, 결국 1970년대 후반에 이르면 대중들이 숭늉처럼 마시기 시작합니다. 국내 기업에 의해서 인스턴트 커피가 생산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유행을 반영한 일이었죠.
#차와 커피의 유행, 모두 시대의 반영
차가 아무리 좋다 해도 반드시 대표 음료가 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역사적인 과정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음료는 생활패턴과 관계가 있고, 그 패턴은 다시 사회, 산업 등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커피가 여전히 현대사회의 대표 음료로 유지되는 까닭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친 노동으로부터의 각성 효과에 빠르게 마실 수 있는 편리함과 유쾌함을 반영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커피에 어울릴 만한 식료(食料) 즉 빵이나 간식류가 다량으로 생산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커피는 현대 사회 패턴과 어울리며 한국에서도 기호음료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커피의 유행은 차가 주는 부담 때문에 비롯했지만, 실제는 커피가 사회운영 패턴에 딱 맞는 음료로 기능했기 때문입니다. 차가 ‘오래된’ 전통으로 이제 우리 ‘미래’가 되려면, 이처럼 사회문화와 어울려야 한다는 것, 이것은 커피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차를 이야기할 때 곧잘 나오는 또 다른 이야기는 마시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좀 더 커피처럼 쉬워질 수 없는가 하는 건데요. 아직 차에는 커피처럼 간편화한 제품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표준화와 그에 따른 대중화 과정도 많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래된 차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차를 이야기하는 자리임에도 이렇게 커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생활패턴과 음료는 나눌 수 없는 사이라는 것, 그래서 커피와 콜라는 음료로서 현대사회를 상징한다는 것! 즉 커피와 차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사회적 문화적 코드도 서로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두 음료가 서로 갈등하는 사이가 아님에도 그 코드는 다를 수밖에 없고, 그 코드에 잘 부응하지 못하면 차의 공간도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이제 다시 차 이야기로 돌아갈까 합니다. 물론 건강에 초점을 두고 말입니다. 즉 정신과 육체 그리고 사회적 건강을 포함하는 넓은 건강에 주목하면서 말입니다.
“차는 커피와 코드를 달리 합니다. 생존하기 위해 각성해야 하고 편리해야 하며 휴식을 제공한다는 커피의 코드와 달리, 차의 코드는 자기 안의 에너지를 먼저 돌아보게 하는 코드입니다. 나의 삶을 건강하게 재생산해낼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래서 차는 곧 삶의 복원력(復原力)이라 합니다. 이것이 차의 코드입니다. 차는 우리가 간직하고 있던 원래 힘을 복원시키고, 그것을 기초로 해서 육체적 사회적 삶을 이끌어주는 코드를 그 본 모습으로 한다는 것이죠.”
그러니 이제 무엇을 차라고 했을지, 왜 차라고 했을지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요? 설화 속 인물인 신농씨가 해독과 소화제로 ‘차’라는 것을 설파했고 그 뒤 기나긴 역사가 그 이야기를 받아 주었다면, 차에는 그만한 특징이 있지 않을까요? ‘차’라는 말에 담긴 사연을 살펴보면 그 코드가 더 뚜렷해지지 않을까요? 다음 이야기에서 그 사연을 살펴가려고 합니다. /서해진 한국차문화협동조합 본부장
(위 글에서 커피 이야기는 김성윤 선생님의 <커피이야기>를 참고 했으며, 차의 코드와 관련한 풀이는 박현 선생님의 <차예사(茶睿士)> 교재와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