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Life] 이학준 서울옥션 해외부문 대표

"단색화 세계시장 주류 부상… 한국미술에 더 큰 기회 올 것"


국내서 자생한 단색화 해외경매서 최고가 행진
제대로 된 해설서 없고 컬렉터·평론가도 부족
해외서 안정 거래되도록 시간 두고 진출전략 짜야
국내 넘어 홍콩시장 집중… 내년 해외수익이 더 커질것


국내 최대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은 지난달 31일 홍콩 그랜드하이야트호텔에서 진행한 경매에서 해외 경매 사상 최고 낙찰가율(92%)과 최고 낙찰총액(15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2008년 첫 해외 경매 이래 가장 좋은 성적.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게 책정된 작은 크기의 그림까지 예상가의 2~3배를 넘는 경우가 수두룩했고 기대를 모았던 대형 작품들도 최고가 행진을 이어갔다. 특히 박서보·정상화·윤형근 등 국내의 대표적인 단색화 작가의 작품 가격이 잇달아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박서보의 단색화 작품 '묘법 No.3-82'가 작가 통산 최고가인 7억원(490만홍콩달러)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날 윤형근의 '무제'와 정상화의 '무제 88-7-1'도 각각 3억5,200만원(220만홍콩달러), 6억1,400만원(430만홍콩달러)으로 역대 가장 높은 가격에 팔렸다. 이번 경매가 특히 주목받은 것은 이날 경쟁사인 K옥션도 비슷한 규모와 내용의 경매를 같은 건물에서 진행해 추정가 240억원 상당의 한국 미술작품 200여점이 쏟아졌기 때문. 단기간에 주목받은 한국 단색화 열풍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해외 유력 컬렉터들이 최고가 낙찰 작품들의 주인이 됐고 낙찰률이 보여주듯 유찰되는 품목은 드물었다. 한국 미술에든 단색화 열풍에든 하나의 전기가 열렸다는 평가다. 서울경제신문은 이 간단치 않은 성공을 이끌어낸 주역, 이학준(50) 서울옥션 해외 부문 대표를 만나 향후 한국 미술 시장에 대한 전망과 서울옥션의 전략을 물어봤다.

"한국 미술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굉장히 중요한 시점입니다. 과거 백남준·이우환 같은 작가는 해외에서 활동하며 유명세를 탔지만 단색화 작가들은 국내에서 자생한 경우입니다. 국내(로컬) 미술이 글로벌 미술로 진출하고 있는 거죠. 기존 관점에서 본다면 1년 새 최고 10배까지 오르는 작품 가격이 '거품'으로 보이겠지만 단색화는 이미 세계 미술 시장의 흐름에 올라탔습니다."

3일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 본사에서 만난 이 대표는 이번 경매의 결과에 고무돼 있었다. 특히 그가 주목하는 것은 주요 작품이 의미 있는 주인을 만났다는 것. 유럽·미국·중국·대만·싱가포르 등 다양한 지역에서 이번 경매에 참여했고 실제로 낙찰가가 높았던 작품은 대부분 그들이 가져갔다.

"정상화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비쌌던 2점은 중국에서 미술관을 갖고 있는 유명한 컬렉터가 사갔고 김환기의 작품은 미국 쪽에서 낙찰받았습니다. 윤형근의 예전 작품은 홍콩 쪽이었죠. 세계 미술 시장에서 주목하는 컬렉터가 구입했다는 것은 이제 한국 미술이 메인 스트림에 들어가고 있다는 얘기죠. 단색화는 해외에서 한국 미술을 잘 이해할 기회를 가져다줄 겁니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무엇보다 한국 미술에 대한 제대로 된 영문·중문 해설서가 없고 적극적으로 시장에 알려줄 '우군'인 해외 컬렉터·평론가가 부족하다는 것. 특히 가격이 급상승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단색화의 경우 더욱 절실하다. 현재의 의구심을 씻어내야 해외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거래되기 때문이다. 통상 크리스티나 소더비 같은 세계적인 경매회사에서는 '일곱 자리 숫자 작가', 즉 작품의 평균 가격이 100만달러 이상인 작가가 돼야 의미를 둔다.

"해외에 나가면 다들 단색화에 대해 묻습니다. 책으로든 인터넷으로든 자료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죠. 사실 국내에서도 관련 해설서가 별로 없으니 당연한 노릇입니다. 그래서 이번 경매 때 진휘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에게 도록 해설을 의뢰했고 서진수 강남대 교수, 자오리 중앙미술학원 교수(전 아트베이징 총감독)에게 강연도 부탁한 거죠. 계속 함께 작업을 이어갈 겁니다. 이해가 안 되면 의구심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죠. 또 현재 서 교수가 주도하는 단색화 해설서 작업을 지원하고 있고 번역본 역시 지원할 계획입니다."

서울옥션의 이 같은 성공은 이미 증권가에서도 예고됐다. 코스닥 상장사인 서울옥션의 주가는 지난해 말 5,000원 선에서 최근 2만원대까지 4배 급등했다. 지난달 초 1% 수준이던 외국인 지분율도 4%를 오르내린다. 홍콩 경매 다음 날인 1일에도 상한가를 기록했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이 전년 대비 25% 성장하고 세계 시장 역시 연평균 28% 수준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증권은 잘 모르지만 실적과 비전을 평가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올해 1·4분기 영업이익만 봐도 지난해 3억원에서 20억원으로 늘어났고 단색화를 중심으로 한국 미술이 세계 주류 시장으로 나가고 있죠. 과거에는 한국 미술 시장이 세계 시장과 상관없이 부진했는데 이제는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투자자가 이런 가치를 인정해준 것 아닐까요."

이 대표는 앞으로 한국 미술 시장에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역설적으로 1997년 IMF를 거치며 경매 시장이 열릴 수 있었고 갤러리-옥션이라는 두 유통의 축이 형성됐습니다. 2005년부터 시장이 커지기 시작해 2007년에는 3배로 늘어났고 이제는 홍콩에서 한국 미술, 단색화가 인정받는 시기까지 왔죠. 이런 큰 변화보다 더 큰 움직임이 향후 10년 사이 있을 것이고 더 많은 기회가 찾아올 겁니다."

서울옥션에 대해서는 해외 수익이 더 늘어나 내년이면 국내 부문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당분간 홍콩 시장에 집중합니다. 국내-해외 매출 비중이 이전에 7대3 정도였다면 올해는 6대4가 될 겁니다. 내년이면 매출이 국내보다 더 커질 겁니다. 중장기로는 홍콩에 상설 전시장을 마련해 꾸준히 한국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고객을 응대하는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단색화가 잘된다고 우리 미술을 무작정 내놓기보다는 시간을 가지고 순차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한편 이번 서울옥션의 홍콩 경매에는 그간의 근현대 미술 중심의 작품에 고미술 부분이 추가됐다.

그간 한국 고미술 작품을 소화해온 크리스티·소더비 뉴욕 경매가 수익성을 이유로 지난해부터 이 창구를 없애버렸기 때문. 첫 경매에서는 '백자청화송하인물위기문호'가 13억6,000만원에 거래되며 경매 전체에서도 최고 낙찰가를 기록했다. 일단 좋은 출발이지만 이 대표에게는 아쉬움이 있었다.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국보·보물급 희귀 유물이 아니라면 해외에 나가는 것도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문화 선양'이라고 봅니다. 영구 임대든 교환이든 다양한 방식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11세기 무렵 도자기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중국과 한국 정도, 더구나 우리는 고려청자라는 찬란한 유산이 있는데도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고 있죠. 반드시 국내에 있어야 할 것과 나가도 되는 것을 선별해야 합니다."

He is…



△1965년 서울 △1984년 서울고 △1989년 고려대 경제학과 △1990년 가나아트갤러리 입사 △1998년 서울옥션 설립 멤버로 참여 △1999년 서울옥션 총괄이사 및 영업본부장 △2006년 서울옥션 전무 △2008년 서울옥션 대표이사 △2014년 서울옥션 해외 부문 공동대표



"그림, 인생 풍요롭게 해… 문턱 낮춘 온라인경매 등 미술 대중화에 큰 도움"



"그림은 제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무엇'입니다. 아이들 생일마다 미술 작품을 선물하는데 좋아할 뿐만 아니라 제법 다양한 해석을 내놓더군요. 현대 미술에서는 작가 의도를 넘어 관람객의 해석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런 것이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거죠. 집에 손님이 와도 마찬가지고 밤에 아내와 와인을 마시면서도 얘깃거리가 됩니다. 집에 그림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죠."

사실 그는 예술 관련 전공자가 아니다. 고려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잠시 가나아트센터에서 일하며 그림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졸업 후 잠시 대기업에 다녔던 그는 결국 가나아트에 입사해 로이 릭턴스타인, 조르주 브라크, 재스퍼 존스 등 유명 화가의 국내 전시를 유치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렇게 10여년 경력을 쌓은 그는 지난 1999년 서울옥션 설립 멤버로 참여했고 2008년 대표이사가 됐다.

"미술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호기심이 생겼죠. 저 같은 사람이 많을 겁니다. 우리 교육 체계에서는 그럴 기회가 없죠. 그래서 문턱을 낮추면 좀 더 대중화될 거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서울옥션의 온라인 경매나 프린트 베이커리 사업(예술 작품을 한정판으로 복제한 디지털프린트)도 그래서 의미가 있습니다. 사업 자체적인 수익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는 계기를 주는 거죠. 문화적 '우군'이 되도록."

그림에 관심이 많지만 가격 때문에 엄두를 못 내는 사람들이 타깃이다. 온라인 경매나 프린트 베이커리를 통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십만 원대의 작품으로 익숙해지면 조금씩 규모가 늘어나 수천만 원대의 작품까지 관심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고 수십만 원에서 수십억 원대까지 하나의 '포트폴리오'를 가져가는 것이 서울옥션의 전략인 셈이다.

그런 그의 '선구안', 그림을 평가하는 기준이 궁금해졌다.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일까. '독창성', 이 한마디로 요약됐다.

"그림은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거죠. 태어나고 교육받으며 자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담깁니다. 국민화가 박수근의 작품을 보세요. 당시 살았던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소재지만 표현 방법이 유례없는 독창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초보 컬렉터가 특히 신진 작가를 판단하기는 어려우니 공부도 해야 하고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서울옥션의 일반 대상 강의 같은 거죠. 그림에 대한 안목과 배짱을 갖춘 컬렉터는 훌륭한 작가만큼이나 드뭅니다."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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