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구제금융 4개월 연장] 급한 불 껐지만 위기해소까지 최소 3개 관문 더 통과해야

재정 탄력 운용 등 허용했지만 긴축안 심사는 채권단이 칼자루
6월말 전후 부채 재협상서 그리스 무리수 안둘 가능성


"정부를 운영하는 것은 현실이며 현실은 종종 꿈처럼 달콤하지 않다."

지난 20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이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만기를 6월로 연장하기로 합의한 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이 그리스의 급진 좌파 정부를 겨냥해 한 말이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그동안 유럽 각국을 방문하며 채권단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 했지만 포르투갈 등 그리스와 동병상련 처지인 남부 유럽 국가들로부터도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이번 합의는 이 같은 정치적 상황의 연장선에서 도출된 것으로 평가된다. 유로존은 그리스가 긴축정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재정 운용에도 일부 탄력을 허용하면서도 긴축안에 대해 채권단이 심사할 수 있도록 해 칼자루를 놓지 않았다. 아울러 해당 개혁정책을 실사해 오는 4월 말 구제금융 미지급액을 마저 지원하더라도 해당 자금을 그리스 정부 재정지출 용도가 아닌 은행 자본확충 용도로만 사용하도록 못 박았다.

치프라스 정부도 당장 눈앞에 다가온 국가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블룸버그는 이번 합의를 통해 그리스는 시간을 벌었고 채권단은 그리스에 대한 재정수지 균형 달성 요구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며 "모든 진영이 승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새로운 만기인 6월까지 새로운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고비를 넘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단순히 파국을 조금 뒤로 미루는 시간벌기에 불과하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그리스가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경제개혁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는다면 독일이 최근 우려한 것처럼 유로존을 분열시길 '트로이목마'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당장 그리스가 채권단을 만족시킬 만한 경제개혁안을 내놓고 이를 충실히 이행하느냐가 관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치프라스 총리 측도 채권단을 감안, 정부의 재정 건전성과 금융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는 정책 추진에는 신중하겠다는 입장이다. 균형재정 달성과 같은 중장기 정책 기조는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구체적인 각론에서 그리스 정부는 여전히 채권단이 그동안 요구해온 긴축정책에 맞서 재정 완화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주장은 거두지 않고 있다. 공공기관 민영화 연기,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정책을 재정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단행하겠다는 입장도 펴고 있다. 그러나 채권단에서는 독일을 중심으로 이에 대해 반대 목소리가 만만치 않아 그리스와 동상이몽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치프라스 정부는 그리스와 동병상련의 처지인 일부 남유럽 국가 진영의 지지를 등에 업고 채권단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포루투갈 등이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등 '반란표'가 나오면서 여의치 않게 됐다. 대규모 구제금융을 받았던 아일랜드가 채권단의 요구를 성실히 이행하며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했던 점도 그리스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그런 만큼 구제금융 시한이 재차 마감되는 6월 말을 전후로 그리스가 채권단과 부채 재협상에 나서더라도 기존처럼 배수진을 치며 강경론을 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단일통화(유로화)와 구제금융이 없었다면 그리스와 아일랜드·포루투갈의 금융시스템은 무너졌을 것"이라며 그리스가 무리수를 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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