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월드카를” 800명 구슬땀/94년 출범… 올 연말께 야심 데뷔작/보디·섀시부분 개발능력 ‘세계제일’영국 남부 서섹스지방의 해변 휴양도시 워딩. 이 곳에 자리잡은 대우자동차 워딩연구소(DWTC)는 올 연말에 데뷰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대우자동차가 에스페로의 후속모델로 군산공장에서 생산하는 J100이 워딩연구소의 첫 자체개발 작품이다. 워딩연구소는 또 이달말에 판매되기 시작하는 라노스(르망 후속모델)도 부평기술연구소와 공동으로 개발했다.
워딩연구소는 국내기업의 해외투자중 색다른 사례로 꼽힌다. 국내기업이 대부분 생산비용 절감이나 무역장벽 돌파를 위한 생산기지를 확보하려고 해외투자에 나서고 있다. 반면 워딩연구소는 생산기지가 아닌 순수 연구소를, 그것도 국내 연구소보다 기술수준이 높은 연구소를 전격 인수한 독특한 사례인 것이다.
지난 92년 10월까지 대우자동차는 반쪽 자동차회사였다. 대우자동차는 대부분 합작회사였던 미국의 GM이 개발한 제품을 생산하는 체제였다. 자체적으로 신차를 개발할 능력이 없는 자동차회사란 하청회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우자동차는 GM과 헤어지기 어려웠고 막상 결별한 후 후유증도 클 수밖에 없었다. 부평 기술연구소가 있지만 원체 규모가 작았다.
이같은 처지인 대우자동차에 워딩연구소는 행운으로 다가왔다.
자동차의 발상지는 영국. 그러나 지금 순수한 영국제 자동차는 전혀 없다. 영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라도 자본주는 독일 등 외국기업이다. 영국의 자존심이었던 롤스로이스도 독일기업에 넘어갔다.
하지만 영국의 자동차 기술은 아직도 세계 일류로 평가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워딩연구소의 전신인 IAD(International Automotive Design)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던 자동차설계 전문 용역회사였다. 지난 76년 설립된 IAD는 포드의 링컨 타운카, 롤스로이스의 벤틀리 쿠페, 마쓰다의 스포츠카인 MX5, 볼보의 440모델 등을 개발, 자동차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워딩에 본사를 둔 IAD는 이같은 성공에 고무되어 90년대 들어 독일 프랑크푸르트,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에 연구소를 개설하는 등 과감하게 시설을 확장했다가 자동차경기 불황을 맞아 경영이 악화되는 바람에 93년 미국의 메이플라워사에 경영권이 넘어가게 됐다.
그러나 메이플라워사는 영국에 연구소를 이미 갖고 있었기 때문에 워딩연구소를 정리하려 했고 때마침 독자적인 연구소를 절박하게 원하고 있던 대우자동차와 이해관계가 딱 맞아 떨어진 것이다. 특히 IAD가 한국 자동차회사들의 신차 개발에도 적지않게 참여했기 때문에 IAD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던 대우자동차는 큰 망설임없이 워딩연구소의 인수를 결정할 수있었다. 인수작업부터 직접 관장했고 지금도 연구소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한기상 부사장은 『GM과 결별하면서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신차종을 3,4개정도 내놓아야 할 상황이었는데 조직과 인력을 모두 갖춘 워딩연구소가 때맞춰 매물로 나와 곧바로 인수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93년 8월부터 협상은 시작됐고 대우자동차는 한달만에 워딩연구소의 연구인력 1백70명과 건물을 인수, 워딩연구소의 간판을 IAD에서 DWTC(대우자동차 워딩테크니컬센터)로 바꿔 달았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다고 자랑했던 대영제국의 후예들, 그것도 난다긴다하는 전문 연구원들로 구성된 연구소를 동북아시아 구석 자그마한 반도의 한국기업이 경영하겠다며 인수하고 나선 셈이다.
지난 94년 1월 워딩연구소가 본격 가동될때까지도 「대우가 어떤 회사냐」며 일본 기업으로 오인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현재 워딩연구소의 연구원은 8백명으로 늘어났고 인수과정에서 연구소를 떠났던 연구원들도 상당수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이처럼 워딩연구소가 제자리를 잡을 때까지 난관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고 한 부사장은 술회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콧대높은 전문 연구원들을 장악하는게 쉽지 않았다는 것. 나름대로 최고라고 자부하는 연구원들을 통솔하기 위해서는 관리자들이 이들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지 체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수 밖에 없었다고 한 부사장은 귀띔했다. 이를 위해 선진 자동차회사의 연구소를 텍스트로 삼아 수시로 연구원들의 자존심을 자극한게 주효했다는 것이다.
또 IAD시절 전문 용역회사로서 용역받은 프로젝트만 마무리하는데 익숙했던 연구원들이 사후관리까지 모두 챙길 수 있도록 바꿔놓는데 1년이상 걸렸다는 것이다.
영국인과 한국인의 사고방식 차이도 큰 장애물이었다. 짐 메이슨이사는 『한국인의 경우 토론을 잘 안하고 대부분 토론의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같다』며 『한국인 관리자들은 더 많은 정보를 자신에게 보고하도록 요구하면서도 결정은 윗사람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 충실하고 다른 사람과 토론을 자주 하지만 자신의 업무이외의 일에는 관심을 쏟지않는 영국인에게 이상하게 비친 한국인의 모습이다.
한부사장은 직무분석을 정확하게 해 각자의 권한과 책임을 명백하게 함으로써 이같은 갈등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우자동차는 현재 부평기술연구소와 워딩연구소를 합해 3천여명의 연구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선두 자동차회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연구인력이며 현대자동차에 비해서도 절반규모밖에 되지않는다. 워딩연구소는 하지만 현대자동차에 뒤지지 않는 기술수준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으며 GM 등 세계 일류 자동차회사에 비해서는 현재 5년정도의 기술격차가 있지만 조만간 이를 단축할 수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워딩연구소는 CATIA라는 자체 자동차설계 소프트웨어를 통해 부평기술연구소와 리얼타임으로 공동작업하고 있다. 워딩에서 설계하면 곧바로 부평에서 제작, 시험하는 방식이다. 워딩연구소는 또 차이스제 3차원 시험기, 스테레오 리토그래피 등 첨단 기기들을 동원해 신차개발기간을 3, 4년에서 30개월 수준으로 단축시켰다.
대우자동차는 앞으로 2∼3년내 워딩연구소의 연구인력을 8백명에서 1천2백명수준으로 늘려 부평연구소를 합한 전체 연구인력이 4천명수준에 이르면 매년 2,3종의 신차를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세계적인 명차 포르셰의 디자인에 오랫동안 참여했고 일본 마쓰다사의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지난 1월 워딩에 가세한 진저 오슬씨는 『차체 및 섀시부분에 관해서는 워딩연구소가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워딩연구소는 라노스와 내년 출시 예정인 J100에 이어 동구권의 대우자동차 공장들이 생산하게 될 신차종 및 개량 모델들을 개발하고 있다. 워딩연구소의 실력이 세계 고객들에게 평가받을 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워딩(영국)=이세정>
◎인터뷰/한기상 워딩연구소 부사장/“유럽 일류디자이너만 채용”
한기상 부사장은 워딩연구소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대우자동차 부평기술연구소장을 역임했던 한 부사장은 자동차의 발상지인 영국의 고급 연구소를 통째로 인수, 대우 가족으로 성공리에 편입시켰다는 자부심을 감추지 않는다.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한부사장은 『기업은 계속 커지거나 아니면 망하는 길밖에 없다』며 대우자동차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워딩연구소의 성공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선진국의 고급 기술인력을 다스리는데 어려움은.
▲처음에는 연구원들이 대우자동차를 우습게 아는 분위기였다. 한마디로 자동차에 대해 뭘 아느냐는 식이었다. 실제로 워딩연구소는 기술이나 경험, 노하우 등이 우리보다 앞서있는 곳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원들보다 더 많이 알기 위해 노력했다. 부리는 사람이 한 수위에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지 않으면 통솔이 힘든 상황이었다.
영국에서 연구소를 운영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텐데. 국내 부평기술연구소를 확충하는 경우와 비교하면.
▲부평연구소를 확충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92년 GM과 결별하면서 당장 신차개발능력을 갖춰야 할 절박한 처지였다. 일시적인 경제적 부담이 있더라도 연구소 조직을 송두리째 인수하는게 불가피했다.
그러나 현재 운영비용은 오히려 한국보다 적게 들어간다. 인건비 수준은 국내와 비슷하지만 관리비는 싼 편이다.
고급 인력을 채용하는데 어려움은.
▲대우자동차의 인지도가 영국에서 점차 높아지고 있어 인력채용에는 어려움이 없다.(짐 메이슨기술담당이사는 워딩연구소가 경험있고 쓸만한 인재에 대해서는 충분히 대우해 주고 있어 지원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워딩연구소의 현재 수준을 자체 평가하면.
▲GM이나 포드같은 회사에 비하면 5년정도 격차가 있다. 설비투자와 인력양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부분에서는 이들과 맞먹는 수준에 도달해있다. 또 워딩연구소는 과거 IAD가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디자이너들만 모아놓은 곳이기 때문에 디자인에 관해서는 세계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이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