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위기 백기사役 ECB 싸고 佛-獨 또 충돌

佛, 국채 잇단 급등에 유럽연합기관 역할 강화 주장
獨은 "인플레 리스크 또 불거질라" 적극 개입 반대


유로존의 위기 타개를 위해 가까스로 타협을 해 온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중앙은행(ECB)의 개입강도를 두고 또다시 맞붙었다. 최근 ECB가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채를 매입해 줌으로써 유로존이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는 ECB의 역할 강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 독일은 더 이상의 개입은 안 된다고 못을 박고 있어 유로존 양대 산맥인 두 나라가 정면 충돌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16일(현지시간) 외신들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재정위기 해결을 위한 ECB 개입에 대해 공개적으로 찬성론을 제기했다. 프랑수아 바루엥 재무장관은 이날 경제전문지 레제코와의 인터뷰에서 "ECB를 포함한 모든 유럽연합 기관들이 재정위기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발레리 페크레세 예산장관도 "ECB의 역할은 유로화뿐만 아니라 유럽의 재정도 안정시키는 것"이라며 ECB가 회원국의 재정위기 타개를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지금까지 독일의 눈치를 살피느라 대놓고 ECB의 역할 강화를 주장하지 못했던 프랑스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돌변한 것은 자국이 '트리플 A' 등급을 사수하기 위해 사실상 ECB 밖에 기댈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유럽 재정위기의 다음 희생양으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ECB가 손을 놓을 경우 당장 프랑스의 국채수익률이 급등할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NYT)는 "독일의 입장을 지지하던 프랑스가 국채 시장이 위협을 받자 독일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ECB 개입에 반대를 표명던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유로존 내 다른 트리플A 등급 국가들도 자국의 국채 수익률이 급등하자 저마다 프랑스 입장에 동조하고 나섰다. 반면 독일은 ECB가 언제까지 유로존의 백기사 노릇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엔다 케니 아일랜드 총리와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ECB가 채권시장에 과감히 개입하는 것은 유럽연합(EU)의 조약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위기 해결의) 유일한 방법은 경제개혁을 통해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이 ECB의 추가 개입을 완강히 반대하는 것은 지속적인 개입이 ECB의 독립성을 훼손시킬 뿐 아니라 ECB의 도움에 의존하는 유로존 은행들의 모럴 해저드를 초래할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NYT는 독일이 고집을 부리는 배경에 '인플레이션'트라우마가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양차 대전을 치르면서 살인적 수준의 고물가에 시달렸던 독일이 ECB의 국채 매입으로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불거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독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유로존 붕괴가 아니라 인플레이션"이라고 지적했다. ECB의 역할을 둘러싸고 독일과 프랑스가 날 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의 의견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ECB가 유로존 재정위기 해결의 최후의 보루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위기가 확산되기 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이먼 틸포드 유럽개혁센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ECB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신호를 보내야 유로존 위기가 꺾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ECB가 유로존 재정위기의 소방수임은 인정하지만 ECB의 개입이 언제까지 약발을 발휘할 지는 알 수 없다는 회의적 의견도 제기된다. 실제로 ECB가 이날 하루에만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 총 1억4,600만유로어치를 사들였지만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구제금융 마지노선인 7%를 또다시 넘겼고 스페인의 국채수익률도 3일 연속 6%를 웃돌며 ECB 개입 효과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NYT는 "ECB 개입 효과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 ECB 역할을 두고 프랑스와 독일간 치킨 게임이 계속되는 한 유로존의 불안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