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오염의 주범으로 인식됐던 디젤이 '클린디젤'로 거듭나면서 고유가의 파고를 넘을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클린디젤이란 유럽의 '유로5', 미국의 'SULEV' 등 엄격한 배기가스 배출기준을 만족하는 친환경 디젤을 말한다. 클린디젤은 연비가 높은데다 디젤의 단점이었던 이산화탄소ㆍ미세먼지 등의 배출을 확 줄여 고유가시대 '넘버원' 연료로 급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 등에서는 클린디젤이 대세다. 하지만 친환경과 높은 연비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내 시장에서 클린디젤은 아직 '찬밥'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해 연료'라는 낡은 인식과 자동차 제조사들의 외면이 주된 이유다. ◇왜곡된 에너지 소비구조=GS칼텍스는 지난 12일 전남 여수공장에서 하루 6만배럴 생산 규모의 제3중질유분해시설 준공식을 가졌다. 이 시설은 원유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찌꺼기인 아스팔트 등 초중질유를 원료로 값비싼 경유와 등유 제품을 만드는 설비다. GS칼텍스는 이 시설을 짓기 위해 창사 이래 최대인 2조2,000억원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이 설비에서 생산한 경유는 국내 시장에서는 판매되지 않는다. 내수시장에서 경유 수요가 갈수록 줄고 있어 GS칼텍스는 이 설비에서 추가로 생산한 경유를 전량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정유업체가 생산한 고품질 경유가 해외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국내시장에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정유업계가 늘어난 경유 생산물량을 전부 해외시장에 수출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국내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싼 경유 대신 비싼 휘발유를 더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사실 경유는 국내 정유업계의 대표적인 수출 효자 품목이다. SK에너지ㆍGS칼텍스ㆍS-OILㆍ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는 지난해 총 2억6,839만배럴의 경유를 생산해 이 가운데 절반가량인 49%, 1억3,076만배럴을 수출했다. 2003년 30%에 불과하던 경유 수출비중은 2005년 37%, 2007년 40%, 2009년 48% 등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경유 수출비중이 높아진 것은 국내 경유 소비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경유 소비량은 2007년 1억4,533만배럴에서 2010년 1억3,465만배럴로 3년 새 7%가량 감소했다. 반면 액화석유가스(LPG)는 세제 혜택과 보조금 지급 등으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 대조를 보이고 있다. 2010년 국내 LPG 소비량은 총 1억518만배럴로 2007년 대비 8% 증가했다. 늘어난 LPG 소비량은 고스란히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전체 LPG 소비량의 66%에 달하는 6,963만배럴의 LPG를 수입했다. 정유사들이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26%나 나오는 경유는 국내시장에서 외면 받아 절반가량을 수출하고 3~4%밖에 나오지 않는 LPG는 비싼 돈을 들여 수입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클린디젤 수요가 늘어나면 LPG 수입을 줄이면서 에너지 안보를 튼튼하게 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클린디젤차는 가장 효율적인 그린카=세계 자동차업계는 이산화탄소(CO2) 등 유해물질 배출이 적고 연비 효율이 높은 '그린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자동차 강국인 미국ㆍ유럽ㆍ일본은 물론 신흥대국인 중국 정부도 환경과 에너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그린카 개발 및 보급 확산에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자동차업계가 개발 중인 그린카로는 하이브리드(내연기관+전기모터), 클린디젤, 전기, 연료전지 자동차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그린카 가운데 현재 양산능력을 갖추고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클린디젤과 하이브리드자동차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오는 2020년 전세계 클린디젤자동차 수요는 780만대로 세계 승용차 수요의 14.3%를 차지하고 하이브리드자동차는 1,100만대(20.1%)가 판매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면 2020년 전기차 수요는 150만대(2.8%)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자동차 시장조사기관인 JD파워도 2015년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클린디젤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28.3%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현재 경제성과 친환경성ㆍ기술성 등을 고려할 때 그린카 가운데 클린디젤자동차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선 하이브리드자동차의 경우 선발주자인 일본 업체들이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점하고 있어 추격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 전기차는 아직 본격적인 양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다 비싼 배터리 가격과 충전 인프라 부족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반면 클린디젤자동차는 다른 그린카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국내 업체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내연기관 기술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 가장 현실적인 그린카로 주목 받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은 "하이브리드자동차의 판매 부진과 전기자동차의 상용화 지연, 디젤 자동차 비중이 높은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등을 감안하면 그린카 중 클린디젤자동차의 개발과 보급을 늘리는 게 현실적인 대안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