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기다린 인선치고는 '감동 없는 무미건조함' 자체였다. 시장에 확실한 카리스마를 전해주는 특색 있는 인사는 없고 이번에도 학자들로 대부분 채워졌다.
13일 나온 4명의 금융통화위원 면면을 보면 특정 분야에 치우치지 않는 인사들이 합류했다. 한국은행도 차기 금통위 위원 구성이 종전에 비해 특정 경력이나 분야에 편중되지 않고 골고루 분포되는 특징을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조용한 금통위'가 이어질 것임을 예고한다고 할 수 있다. 김중수 한은 총재와 성향이 비슷하다는 말도 나온다.
자연스럽게 새 금통위원 성향도 강성(매파)을 띠기보다는 온건(비둘기파) 쪽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당초 우려됐던 'MB 측근 심기' 논란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지만 '한은 독립성'을 책임질 인물로는 다소 약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나마 눈에 띄는 인물은 기업체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금통위원에 오른 정순원 전 현대기아차 사장. 미국 인디애나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현대경제연구원 부사장을 지낸 학자풍 인사이지만 지난 1999년 이후 현대차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이래 줄곧 CEO를 맡았다. 현대차그룹 내에서도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진 정 후보는 이론과 실무경험을 두루 갖췄지만 전문가들이 포진한 금통위에서 소신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다만 김중수 한은 총재가 자주 거론했던 '글로벌 감각과 마켓(시장)을 잘 아는 인물'로는 적격이라는 평가다.
기획재정부에서 추천한 정해방 후보도 공무원 출신이라는 점에서 정권의 입김을 막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 후보는 행시 18회로 공직에 입문에 기획예산처 예산실장과 차관을 거친 터라 매파보다는 비둘기파에 가깝지 않겠느냐는 전망을 낳고 있다. 재정 분야에 대해서는 '걸어다니는 예산백과사전'으로 불릴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한은 총재가 추천한 문우식 후보는 국제금융 분야에 대한 다년간의 연구 경험이 있어 글로벌 감각을 강조하는 김 총재로부터 낙점을 받았다. 특히 외교통상부와 교육과학기술부의 정책자문위원과 재정부 정책성과평가위원 등의 자격으로 다양한 정책 수립에 참여한 경험을 갖고 있는 점이 점수를 받았다.
금융위원장 추천을 받은 하성근 후보는 비교적 한은과 인연이 깊다. 1980년부터 4년간 한은 조사제1부 전문연구원을 역임한 경력이 있는데다 1992년에는 조사제1부 자문교수로도 활동했다. 통화금융을 전공한 경제학자로서의 연륜과 금융회사 사외이사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을 아는 금통위원으로 자리매김할지 주목된다.
한은은 차기 금통위원 후보에 대해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이해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통화신용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도록 하려는 한은법 추천제도의 취지를 충실히 반영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한은 안팎에서는 이들 4명의 후보를 비교적 온건 성향의 인물로 받아들이면서 한은의 독립성 확보에 제대로 기여할 수 있을지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