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근로자가 600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확산되면서 불합리한 차별을 받는 근로자들이 상당히 많고 정규직과의 근로조건 격차도 큰 실정입니다. 기업들이 편의만을 위해 파견·용역 등의 간접고용을 택하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는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하도급과 같은 간접고용으로 흘러온 고용 생태계를 직접고용 중심으로 바꿔놓을 생각입니다." 이기권(57·사진)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7일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라며 "기업들이 하도급만 주려고 하지 말고 가급적 직접고용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업무 성격과 난이도에 따라 임금을 달리하는 직무급을 적용하면 간접고용을 해소할 수 있다"며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늦어도 내년까지는 트렌드를 바꿀 수 있는 룰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이 제시한 고용의 룰이란 노사가 근로시간과 임금체계에 대한 큰 틀의 합의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내년이라는 시한을 제시한 것은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에 따라 오는 2016년부터 60세 정년 시대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 장관은 "현재 노동시장의 평균 퇴직연령이 53세로 정년에 미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연령과 근속에 따라 임금이 자동 상승하는 연공서열식 임금체계에 있다"며 "노사가 협의를 통해 직무내용과 성과를 반영하는 합리적인 임금체계로 개편해야 하는데 아직 속도가 늦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입사해서 10년 정도까지는 숙련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연공서열이 필요한 측면도 있어 복합적으로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면서 "임금피크제 도입 등의 임금체계 개편 없이 정년연장이 이뤄진다면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이 하락해 오히려 장년층 고용이 불안해질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장관은 "기업별로 법정시한 전에 과감하게 정년을 60세로 연장하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임금부담을 줄여주면서 정년연장도 할 수 있게 된다"며 "이렇게 되면 올해와 내년에 퇴직하는 1956~1957년생 '낀 세대'도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이 장관은 지난달 국정감사에 이어 이달에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에 참석하며 빡빡한 국회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예산안 논의가 마무리되면 산적해 있는 현안과 밀접한 법안들을 통과시키는 것이 이 장관의 숙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킴으로써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작업이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제출한 법안을 포함해 모두 6건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2,071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671시간)보다 상당히 많다.
이 장관은 "1,700~1,800시간까지 줄여나간다는 기본원칙에는 노사정이 합의했다"면서 "근로시간에 비례해 임금을 줄이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생산성도 올리면서 가급적 임금이 줄지 않도록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법정근로시간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일 때 6단계를 거친 것과 같이 속도조절을 위한 연착륙 방안이 병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급격하게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중소기업 부담이 늘어나 근로자 소득도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로 인정해달라며 성남시 환경미화원들이 낸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어 입법화가 시급한 상태다. 이 장관은 "주 52시간(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에 노사 합의로 늘릴 수 있는 8시간을 '알파' 개념으로 보는 게 현실적이라는 생각"이라며 "잘 정착하기 위해서는 업종별 특성이 있으니 당사자가 사업장 형편에 맞게 활용을 높이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큰 방향은 줄여나가되 재량권은 높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 장관이 금속·화학섬유업계 근로자·사용자들과 막걸리를 마셔가며 의견을 들은 자리에서 노동계도 정부 생각에 크게 동의했다고 한다.
이 장관은 이 같은 맥락에서 한국 사회를 학력 중심에서 능력 중심으로 바꾸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그는 "우리 사회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졸과 고졸, 대기업과 중소기업, 남성과 여성 등 이른바 4대 격차가 존재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문제가 학력 간의 격차"라며 "능력 중심의 사회가 돼야 학력격차를 해소하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철학이 담겨 적극적으로 추진되는 정책이 한국형 맞춤식 도제훈련 시스템인 '일·학습병행제'다.
이 장관은 근로자들 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원청업체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에서 1억원을 받는데 2차 협력업체 직원이 2,000만~3,000만원을 받으면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할 것"이라며 "협력업체 근로자를 도와주기 위해서는 대기업 노사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절감했다"고 토로했다. 이 장관은 또 "원청에서 출연하면 정부도 일정 비율을 맞춰 출연해 협력업체 직원들이 쓰도록 하는 상생협력기금을 만들기 위해 100억원의 예산을 편성해놓았다"며 "대기업에는 세제혜택을 주도록 설계함으로써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로 유도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비정규직 격차 완화를 위해서는 연내 '비정규직종합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 장관은 "기간제와 파견, 용역, 사내하도급, 일용, 특수형태업무종사자(특고) 등 고용형태별 특성을 반영해 그분들이 가장 절실한 분야를 중심으로 맞춤형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법상 보호가 미흡한 특고층의 경우 사회보험 가입을 확대하고 직종별 실태를 반영해 불공정 관행 개선을 추진할 방침이다. 기간제와 파견 근로자에 대해서는 불합리한 차별을 해소하고 남용을 방지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그는 "청년들은 기간제 근속기간이 늘어나는 것을 희망하지 않고 중장년층은 정반대로 기간제 근로자의 연령별 생각이 다르다"면서 "다양한 계층을 감안한 기간설정을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전했다.
최근 이슈가 된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문제에 대해 이 장관은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전제하면서 "노사단체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당사자 입장에서 고민하는 게 가장 필요하다"고 답했다. 특히 그는 "제도를 변경했을 때 무기계약직이 기간제로 내려오는 부작용이 있을지, 반대로 하도급을 주는 간접고용에서 직접고용으로 전환될지 당사자의 고용안정과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 등 두 가지 측면을 중심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조심스레 밝혔다.
이 장관은 단기계약 반복갱신(쪼개기 계약)에 대해서도 "사회 전체적으로 노력하면 해소될 수 있는 부분"이라며 "남용되지 않고 2년 내에서라도 안정되게 일할 수 있도록 방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사정위원회의 구성과 논의 주제를 다양화하는 것도 이 장관이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다. 현재 노사정위원회는 전국 규모의 노사 대표 위주로 구성돼 비정규직과 시간제 등 갈수록 다양해지는 근로형태를 반영하지 못하면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장관은 "노사정위원회가 나름대로의 역할은 하고 있지만 다양화하는 사회 여건 변화를 다 담아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며 "앞으로 산업별 노사정이 합의해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현안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고용부는 노사정위원회법 개정작업을 하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위원회 구성에 청년과 비정규직,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표가 참여해 대표성이 강화되고 논의 의제도 노동뿐만 아니라 산업경제와 사회정책으로까지 확대돼 실질적인 사회적 대화기구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다.
현대차 사내하청 판결에 대해서는 "사내하도급 문제를 대법원 판결을 갖고 협의하려면 앞으로 4~5년이 걸리기 때문에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원청 노사와 협력업체 노동조합이 합의를 통해 푸는 게 좋다"고 말했다. 특히 이 장관은 기본적으로 판결은 존중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적법도급과 불법파견을 보는 사유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그는 "원청이 협력업체 근로자의 복지와 안전, 직업훈련교육을 통한 능력향상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번 판결의 영향으로 어떤 상황에도 개입하지 않겠다고 하면 대한민국 협력업체의 근로조건 향상은 이뤄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자리 정책의 주무부처 수장답게 '우리 국민들이 일을 통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이 장관의 철학이다. 더불어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책무는 항상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는 "전일제를 많이 늘리면서 필요한 분들에게 파트타임을 제공해주는 게 최선의 정책"이라며 "결혼 후 아이를 낳은 뒤에 노동시장이 완전히 단절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채용형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지원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전환형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He is… △1957년 함평 △1977년 광주고 △1981년 중앙대 행정학과 △1981년 행정고시 25회 △1982년 노동부 행정사무관 △2002년 노사정위원회 운영국장 △2004년 노동부 홍보관리관 △2007년 고용정책관 △2008년 근로기준국장 △2009년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2010년 대통령실 고용노사비서관 △2011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 △2011년 고용노동부 차관 △2012년 한국기술교육대 총장 △2014년 고용노동부 장관 |
"현장 목소리 생생히 듣자"… SNS·e메일로 활발한 소통 ■ 이기권 장관은 지난 7월16일 취임 이후 117일 동안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활발하게 소통에 나서고 있다. 이 장관은 노동시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은 빼놓지 않고 달려가는가 하면 짬짬이 시간을 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e메일을 통해 고용부 안팎의 인사들과 의견 교환도 하고 있다. 취임 한 달 반이 지난 9월 초에는 고용부 모든 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냈다. 그는 편지를 통해 묵묵히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나타내면서 솔선수범하고 진심이 담긴 행정서비스를 제공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 장관은 "노동행정이라는 게 절실하고 어려운 계층을 상대하기 때문에 정성이 들어가야 하고 고생도 많이 한다"면서 "잘 헤쳐나가면 그만큼 보람도 크니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게 만들어주는 게 제 역할"이라고 말했다. 고용부는 일·가정 양립을 위해 매주 수요일 퇴근시간에 맞춰 PC가 자동적으로 꺼지는 'PC 오프(PC-Off)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장관은 메일을 통해 "효율적으로 근무하면서 수요일과 금요일은 정시퇴근을 실천해 가정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고용부는 일반 산업현장에서도 근로시간을 단계적으로 줄여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기 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2주→1개월, 3개월→1년)와 근로시간저축 휴가제 도입 등의 제도개선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이 장관은 SNS를 통해 외부 인사들과의 소통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난 뒤 20분가량, 그리고 이동할 때 수시로 페이스북에 접속해 정책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페이스북 친구는 3,662명에 달한다. 최근에는 청년들과 직접 만나는 SNS 토크 콘서트를 가진 뒤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답글을 달아주는 모습도 보였다. 이러한 따뜻함과 진정성은 직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호감을 사고 있다. 이 장관은 수시로 시간을 내 산업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들으려고 한다. 취임 후 청소용역과 건설일용·간병인 등 노동시장에서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한국노총과의 적극적인 만남을 통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재개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정기적으로 산업별 노사를 만나 고용 관련 의견을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논의의 장인 '수요포럼'도 마련했다. 현재까지 유통서비스업, 주요 중소제조업, 소프트웨어(SW)산업, 조선철강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났고 앞으로 프랜차이즈산업, 외투기업 관계자와도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 장관은 "산적한 고용노동 현안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노사정 간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원활한 소통이 필수적"이라며 "특히 산업별로 상황과 필요가 다르기 때문에 현장맞춤형 해법 모색을 위해서는 중앙단위는 물론 산업별 노사와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