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재기 근절하려면 대형 출판사 조사해야

정관성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장


"불법 책 사재기는 자기계발서를 많이 내는 대형 출판사부터 면밀하게 조사해야 합니다. 대행하는 중간업체들을 압박하면, 우선 큰 곳부터 걸려들 겁니다. 현재로선 조사·처벌 권한이 없으니 일일이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경고가 될 겁니다."

지난 4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의 정관성(43·사진) 센터장은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성역 없는 조사를 통해 '책 사재기' 같은 불법 유통행위를 근절하겠다"며 "현재는 모니터링 인원이 적어 어려움이 있지만, 내년 출판유통팀이 정식 발족하면 조금 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출판진흥원은 한국경제신문의 출판자회사 한경BP의 책 '상처받지 않고 행복해지는 관계의 힘'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 등 2권에 대한 '책 사재기'를 적발했다. 이에 앞서 9월에는 알에이치코리아(RHK)도 '콰이어트' '나는 공짜로 공부한다' 등 2권에 대해 같은 이유로 적발해 문화체육관광부에 신고,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들어 총 6건의 책을 조사·심의해, 이 중 3개 출판사 5권의 책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신고조치 했다. 한경BP와 RHK가 각 2종, 그리고 자진 신고한 소형 출판사 한 곳이다.

정 센터장은 이번에 적발된 책 두 권에 대해 "책 사재기가 맞다"고 잘라 말했다.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에 따르면, 지난 9월10일 출간된 한경BP의 '상처받지 않고 행복해지는 관계의 힘'은 전체 구매 5,400건 중 30%인 1,600여건이 비회원 구매(회원 가입 없이 인터넷서점서 구입)로 팔려나갔다. 이 중 절반 정도는 한 곳에서 모두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출간 후 1주일간 비회원 구매가 전혀 없다가, 갑자기 평일에 비회원 구매가 몰리고 공휴일·주말에는 전혀 없는 패턴이 반복됐다. 게다가 비회원 구매 중 80% 정도가 지난 5월 출간된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를 구매하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에 출판유통심의위원회에서도 만장일치로 의결됐다. 그는 "특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의 경우 5개 주소지에서 서로 주고받는 식으로 이뤄진 교차주문이 주류였다"며 "출판사에서 일괄구매하면 훨씬 싸게 살 수 있는데 왜 인터넷에서 사겠나"라고 강조했다. 또 현재 문체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RHK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정황에 대한 제보가 있었다고만 말했다.

'책 사재기'는 지난 5월 출판사 자음과모음에서 적발돼 해당 책의 저자인 소설가 황석영 씨가 소송에 나서는 등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었다. 이에 출판계는 지난달 출판사와 유통업체, 서점 등이 모두 모여 유통질서 확립을 결의하고, 위반시 해당 출판사의 회원 자격 박탈과 베스트셀러 목록 제외 등의 강력한 규제안이 담긴 자율협약에 합의한 바 있다한편 이번 적발에 대해 대한출판문화협회 관계자는 "아직 문체부의 최종 결정이 나지 않았고, RHK의 경우 유통협약 이전의 일이라 논의된 것이 없다"며 "내년 2월 예정된 협회 이사회에서 정관에 위배되는 지 여부를 논의해 판단할 사항"이라고 말을 아꼈다. 출판협회는 이들 출판사를 모두 회원으로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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