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수익이 반토막이 나자,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주문하는 모양이다. 어떤 금융지주사는 임원 연봉을 20%, 30% 깎아서 반납하기로 했단다. 지점 통폐합, 연봉 동결 혹은 삭감 같은 험한 일들이 일반 은행원들에게도 곧 닥쳐올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돈이 항상 잘 벌리는 것도 아니니 허리띠를 졸라맬 때는 바짝 긴장을 해야 한다. 그래야 훗날을 기약할 수 있는 법.
투자 세계도 똑같다. 언제나 돈을 잘 벌 수는 없다. 돈 벌 때가 되면 조금만 움직여도 돈이 굴러 들어오지만, 지금은 열심히 뛰어도 될까 말까다. 밥 먹고 살기가 그래서 힘들다. 출렁거림 없이 일정하게 돈을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알고리즘 트레이딩(Algorithm Trading)이라는 투자 기법이 있다. 시장 가격의 움직임을 통계적으로 분석해서 컴퓨터가 스스로 주문을 내고, 돈을 번다. 미국에서 헤지펀드 매니저를 했던 지인이 알고리즘 프로그램을 한 번 써보라고 권하길래, 재미삼아(?) 컴퓨터로 돌려 봤다. 제법 쓸만해서 용돈 정도는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주 트레이딩을 해보니, 돈을 버는데 일관성이 있다. 승률로 따지면 51대49로 버는 경우가 약간 더 많았다. 100번 투자해서 51번 이기고, 49번 지면 그저 그런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투자를 했다 하면 대박이 나는 승률 100%의 투자 대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알고리즘 트레이딩은 동전 던지기 수준의, 그야 말로 운에 맡기는 투자에 불과한 것 아닌가?
알고리즘 트레이딩의 요체는 승률을 월등히 높이는 것이 아니다. 동전을 던져서 앞면 혹은 뒷면이 나올 확률은 이론적으로는 50대50이다. ‘어떤 이유’로 앞면이 나올 확률이 0.01%라도 높아졌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앞면에 베팅하면 된다. 누적된 수익률에서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알고리즘 트레이딩의 요체는 49번 돈을 잃을 때 최대한 적게 깨지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51번 먹은 총 수익이 49번 잃은 총 손실을 커버하면 궁극적인 승자가 된다.
잃지 않는 프로그램이 좋은 것이 아니라, 적게 잃는 프로그램이 좋은 것이다. 0.01%의 승률 차이를 만드는 ‘어떤 이유’를 찾아냈다면, 잃을 때 최대한 적게 잃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다. 그래야 죽지 않고 게임을 계속하면서 돈이 벌릴 때를 맞이할 수 있다. 그 때가 오기도 전에 죽어버리면 시장에서 퇴장이다.
구조조정 국면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금 잃더라도 시장에서 밀려나면 안 된다. 기본적으로 0.01%라도 확률이 높은 전략을 채택하는 유연함을 갖춰야 한다. 너무 멋이 없다고? 이럴 때 일수록 과감하게 투자하라고? 생존 게임은 작은 차이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대안금융연구소 부소장
##글쓴이 정명수 부소장은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해양학과를 졸업한 후 엉뚱하게 경제신문 기자가 됐다. 1995년부터 서울경제신문에서 증권, 금융 취재 기자로 활동하다가 2000년 이데일리 창간 멤버로 참여, 채권 및 파생상품 기사를 주로 썼다. 2003년부터 2년4개월 간 뉴욕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월가를 취재했다. 이때 기사만 쓰지말고, 금융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보라는 유혹을 받았다. 2006년 채권시장 정보제공업체 코리아본드웹으로 옮겨 시장분석팀을 이끌다가 2008년 리딩투자증권 IB본부 이사로 옮기면서 증권맨으로 변신했다. 2011년 리딩투자증권 자본시장본부, 대체투자본부 상무를 거쳐 리딩투자자문 설립 실무 총괄을 맡았고, 이후 고객 자산운용을 지휘했다. 2012년 기존 금융ㆍ투자업의 틀을 깨는 대안적 투자방안을 제시해보자는 취지로 대안금융경제연구소 설립에 참여, 현재 부소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