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대 부자인 리카싱 회장이 이끄는 청쿵그룹이 유럽에서 이동통신·에너지·철도 등 다양한 영역의 사업을 확장함에 따라 리 회장이 자신의 제국을 유럽으로 옮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청쿵그룹이 사업을 부동산과 비부동산으로 재편한 후 지주회사를 조세회피 지역으로 옮기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코드를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리 회장이 홍콩을 떠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었다.
25일 블룸버그 등은 리 회장의 비부동산투자 사업체인 허치슨왐포아가 영국 2위 이동통신 업체 O2를 92억5,000만파운드(약 15조원)에 인수하는 계약이 임박했다고 전했다. 허치슨왐포아는 O2의 대주주인 스페인 텔레포니카 지분을 인수할 예정이며 이미 사들인 영국 4위 이통사인 스리와 합쳐 영국 이통업계 1위에 올라설 것으로 전망된다. 양사 합병 이후 가입자 수는 3,100만명을 넘게 된다. 영국 이통업계는 지난해 12월 유선통신 업체 BT그룹이 1위 업체 EE 인수에 나섰다고 밝히면서 합종연횡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블룸버그는 허치슨이 조만간 이탈리아에서도 이통사 인수합병(M&A)를 진행할 것이라고 전하며 리 회장이 유럽 각 지역의 이통사를 중심으로 자신의 제국을 유럽으로 옮기려 한다고 분석했다.
리 회장은 앞서 10억3,000만파운드에 영국 철도업체 에버숄트를 사들일 것이라고 밝히는 등 유럽 자산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청쿵그룹 계열사인 청쿵인프라스트럭처홀딩스를 통해 북유럽 최대 에너지 기업인 포르툼의 전력공급 사업 인수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13년에는 네덜란드 폐기물처리 에너지회사 RAV를 인수했으며 지난해에는 영국 가스공급 회사 웨일스앤드웨스트유틸리티(WWU)를 10억달러에 인수했다.
리 회장의 유럽 사업 확대에는 중국의 경기둔화로 주력사업인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고 있는데다 홍콩을 중심으로 한 투자사업이 한계에 달한 점이 한 이유가 되고 있다. 여기에 시진핑 정부 이후 홍콩에 대한 통치방식이 예상과 달리 강압적으로 변하며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 점도 또 다른 이유다.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과 막역한 사이였던 리 회장이 시 주석과는 코드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이 벌이는 부정부패 척결운동에 쓰러진 저우융캉과 보시라이 등이 장 전 주석의 측근이었다. 리 회장은 2012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 당시 중국이 미는 렁춘잉 대신 친재벌 성향의 헨리 탕을 지지한 점에 대해서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 최근 리 회장의 경쟁자인 리쇼키 핸더슨부동산그룹 회장이 홍콩에서 저가주택 사업을 벌이며 시진핑 정부와 코드를 맞추는 것 또한 리 회장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