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을 털기 위해서는 은행을 소유하라"는 말이 있다. 이제 냉소적인 격언을 하나 추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은행을 털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이 되라"고. 부채비율 2,099%의 부실기업인 경남기업 성완종 회장이 정무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으로서 국정감사를 기화로 은행들과 감독당국을 압박해 출자전환 명목으로 1,000억원을 면제받고 3,800억원의 신규 대출을 받는 등 6,300억원의 금융지원을 받아냈다는 스캔들 때문이다. 정부·금융산업·기업의 위계구조하에서 이뤄지는 부실기업 처리를 둘러싼 권력이 남용되지 않도록 예방할 필요가 있다.
기업가 의원, 금융 관련 의정 금지해야
먼저 금융산업에 대한 정부 규제를 없애 부패 기반을 제거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비현실적이다. 잠재적 금융사고의 막대한 외부성에 대한 우려 하나만으로도 규제는 정당화된다. 게다가 금융 시스템은 중앙은행의 지원과 고객예금을 기초로 대출을 하고 시스템으로 돌아온 예금이 다시 대출 자원이 되는 신용창조 과정을 통해 사실상 화폐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금융산업은 그 자체로 국가의 화폐고권(貨幣高權) 행사 수단이다. 따라서 자원배분에 관한 정책적 고려에 따라 제약을 받아야 하고 신용확장은 실질적으로 조세에 해당하니 정치적 의사결정도 필요하다.
따라서 정치인의 권력남용은 개인의 도덕성을 규칙으로 강제하는 것 외에는 저지할 방법이 없다. 정치활동으로 얻는 수익의 원천을 세비와 일정 범위의 후원금으로 제한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차제에 추가 규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막스 베버는 기업가는 기업활동에 얽매여 잠시라도 역할을 남에게 맡기기 어렵고 자산가로서 경제적 안정을 인생의 최우선 목표로 고려하기에 대의에 충실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기업가인 의원이 기업이나 금융 관련 의정활동에 부적합함을 의미한다.
금융산업과 기업 간 갈등과 긴장은 기업이 곤경에 처했을 때 현저해진다. 금융계약에서 예상한 바대로 실현된다면 기업은 이자와 원금을 주고 남은 이익을 누리지만 금융채무를 상환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이는 당사자 사이에 약속을 깨는 것을 허용하거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정부가 지원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전자의 전형은 파산(도산)제도다. 무가치한 기업활동은 청산된다. 실패한 투자지만 현금흐름을 유지하는 기업활동은 계속할 기회가 주어지고 채권이 탕감되면 출자지분은 소각돼 기업의 주인이 바뀐다. 기업가는 거의 퇴출되므로 이를 면하려는 기업가의 노력은 처절하다.
'통제 사각' 워크아웃제 재정비 필요
후자의 전형은 공적자금 지원이다. 약속 불이행에 따른 충격이 큰 금융산업이나 초거대기업처럼 시장의 법칙과 사법절차에 의한 처리가 적당하지 않은 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흔히 본다. 국가의 부담이 생기므로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위 두 방법 모두 권력남용과 부패의 여지는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쪽도 아닌 영역이 있다. 주채권은행 주도로 금융기관 채무 재조정과 경영개선을 수행하는 '워크아웃'이다. 시장적 처리의 외관을 가지고 있지만 이해당사자 자신이 조정자로 나서기에 선수가 심판을 겸하는 것처럼 이해관계 충돌의 여지가 있고 정치적 통제도 미치지 않는다. 그러한 공백의 영역에 부패한 권력이 개입한 것이 성완종 리스크였다. 이것을 배제하려면 위 법률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