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기업… 불안한 은행] 미숙한 국책은행… 뒷짐 진 당국

기업구조조정 골든타임 놓쳐 돈 쏟아부은 채권은행만 피멍


금융당국의 보신주의, 국책은행의 무능으로 기업 구조조정 컨트롤타워에 공백이 생기면서 은행권 여신의 부실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업 여신이 부실화할 경우 신속하게 구조조정 칼날을 들이대 기업을 회생시키고 채권단의 손실을 줄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은행들이 더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금융감독원이 대기업 구조조정 과정 때 적극적인 조정자 역할을 했다. 그러나 금감원이 개입한 경남기업 구조조정이 정치권 로비에 의한 특혜 논란에 휩싸이면서 이후 부실기업 정리에서 뒷짐을 지고 있는 모양새다.

금융당국을 대신해 구조조정을 떠맡고 있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잇따른 구조조정 실패로 다른 채권은행들에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산업은행이 구조조정을 맡아 실패한 케이스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동부그룹 구조조정이다. 동부그룹은 지난 2011~2013년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산업은행이 2013년 말부터 구조조정을 맡아 추진했다. 산은은 동부그룹이 계열사 매각, 기업공개, 그리고 오너의 사재출연 등을 통해 3조원가량의 자금을 마련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산은의 매끄럽지 못한 구조조정으로 온갖 잡음이 일었다. 산은은 애초에 성사 가능성도 낮은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을 묶어 포스코에 파는 '패키지딜'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미 철강업황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포스코는 이를 거절했고 결국 일부 알짜 계열사의 매각 골든타임을 놓쳐 그룹 전체의 자금난은 악화됐다. 동부건설·동부LED는 이후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며 동부발전당진·동부특수강·동부익스프레스는 헐값에 팔 수밖에 없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산은에 구조조정을 믿고 맡겼더니 (그룹이) 초토화됐다"고 성토했다. 산은도 이에 질세라 김 회장이 대주주로서의 책임을 방기하면서 구조조정이 지연됐다며 화살을 돌렸다. 결국 칼자루를 쥔 산은이 좌충우돌하는 사이 동부그룹은 회생이 아닌 공중분해가 된 셈이다.

그 사이 채권은행들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구조조정 시작 당시 동부그룹에 대한 금융권의 전체 익스포저는 산은과 수은을 제외하고 3조5,000억원이었다. 동부건설 법정관리에 따른 손실규모만도 1,000억원에 달해 동부그룹 구조조정으로 인한 은행권 손실은 수천억원으로 추정된다. 특히 산은은 최근 불거진 대우조선해양의 거액 손실을 대주주이면서도 감지하지 못해 미숙한 기업관리 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수은도 성동조선에 대한 구조조정 부실로 채권은행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주채권은행으로 구조조정 조타수 역할을 맡은 수은이 제때 저가수주를 막지 못하면서 올 들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지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를 하기 위해 여신을 축소하면 당국이 '비 올 때 우산 뺏지 마라'는 논리로 이를 저지하지만 국책은행이 제대로 된 구조조정 컨트롤타워 역할을 못해 부실이 늘어가는 것은 하소연할 곳도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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