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앞날이 어찌 될는지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이를 반영해 IMF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식가격은 끝을 모르고 하락하고 있고, 금리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환율도 아직은 오름세다.IMF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의 경험을 살펴보면 구제금융이 승인되었다 할지라도 금융시장은 한동안 불안한 양상을 지속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실물경제는 환율상승에 따른 경쟁력 강화로 수출이 급신장하고 수입이 위축되어 경상수지는 급속히 개선되나 소비 및 투자가 크게 위축되어 성장률이 극히 부진하고 물가가 크게 오르는 현상이 12년 가량 지속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외국의 사례는 우리 앞에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혹독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IMF의 구제금융에 대한 전제조건이 무엇인지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으나 경상수지적자 해소, 금융 및 실물산업의 구조조정과 규제완화 등이 될 것이 확실시된다. IMF가 요구할 사항들은 우리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미리미리 해결했어야 할 과제다. 정치적 이유든 능력부족이든 우리의 국정운영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국제적으로 증명된 셈이다. IMF의 개입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우리 경제가 안고있는 취약점에 더해 남북관계나 급변하는 세계경제환경까지 생각해 보면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삼각판도는 결코 만만치 않다. 일본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엔화가치가 떨어지면 우리가 크게 기대하고 있는 수출이 타격을 받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우려하듯이 미국주가가 20%정도만 하락해도 세계경제는 충격을 받을 것이며 이는 우리경제에 강타를 먹일 것이다.
이러한 점까지 고려하여 각 경제주체들은 나름의 위기관리 체제를 갖추고 이를 작동시켜야 할 때다.
외환위기까지의 국면 전개과정을 되돌아 볼때 우리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은 낙제점이다. 정부는 IMF와 긴밀한 공조체제를 이뤄 경제복원을 통해 무너진 신뢰감과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쓸데없는 자존심이나 현실의 일부만에 근거한 지나친 비관이나 낙관으로 일을 그르치지 말고 겸손하고 솔직하게 문제의 핵심을 짚고 이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특히 금융시스템을 새롭게 정비하고 구조조정지원특별법 같은 것을 만들어 구조조정에 걸림돌이 되는 요인들을 제거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다.
근로자들도 인식과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한다. 임금동결은 물론 물가상승과 대량실업의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를 둘러싸고 노사대결 양상으로 번지는 것은 자멸을 재촉하는 일이다. 외국인투자가들은 한국의 노사관계가 근로의식, 근로관행, 제도면에서 한 단계 성숙하지 않는 한 한국경제에 대한 신뢰를 보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노사간의 정보공유를 바탕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유일한 활로다. 부가가치 창출액이 근로자 유지비용보다 작은 경우 그 근로자는 결코 직장에서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원칙에 의한 인력조정의 불가피성은 받아들여야 한다. 평생직장이 아니라 평생고용을 위한 개인 차원에서의 핵심역량 확보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경영환경이 극도로 불리해질 것이기 때문에 기업도 비상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당분간은 보수적인 경영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첫째, 강도 높은 금융긴축과 금융기관의 대출 회수 또는 회피로 고금리와 자금경색이 예상된다. 유동성의 확보, 투자의 정체, 투자집행시기의 신중한 선택이 요구된다.
둘째, 환율급등락의 폭이 큰 만큼 환위험을 줄이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해외에 진출하는 사업의 해당지역의 실물경제 상황은 물론 외환위기 가능성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셋째, 당분간 우리경제는 경기침체와 물가불안의 스태그플레이션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도높은 내수침체에 대비해야 한다.
넷째, 원화환율의 상승으로 수출의 가격경쟁력과 채산성이 크게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 수출을 최대한 활용하여 어려운 시기를 넘기는 전략적 고려가 필요하다.
다섯째,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시장에 구조조정을 맡길 경우 결과는 시장에서의 패퇴를 의미한다.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구조조정에 성공해야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다. 수익성을 동반하지 않는 외형확대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않는 기업은 미래가 없다. 경비절감은 물론 수익성없는 사업과 잉여인력의 정리, 비업무용자산의 처분, 핵심역량의 확보, 세계화·정보화시대에 맞는 조직구조, 운영시스템과 문화정착 등 생존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
한국경제는 당분간 저성장, 고실업, 고금리의 고통을 맛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위기의식을 갖고 긴장해야 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위축되어 스스로 작아질 필요는 없다. 이제는 서로를 비난하는데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문제해결책을 정리하고 실천에 옮기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2∼3년 머리를 잘 쓰고 열심히 한다면 우리가 못해낼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