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와 경제 부작용

요즘 증권시장을 보고 느끼는 점은 두 가지이다.첫째는 극심한 불안정성이고, 둘째는 증시호황이 경제흐름에 미칠 부작용이다.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외국인 전문가는 우리 증시의 극심한 불안정성을 제1의 특징으로 지적한 적도 있다. 이는 오늘의 우리 증시를 보는 국제금융·자본계의 공통된 견해일 것이다. 유능한 투자가는 주식가격이 상승해도 벌고 하락해도 번다. 증시의 불안정성 자체가 수익성을 저해하는 요소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불안정성은 보다 큰 이익의 원천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증시는 국제적 투자가들에는 매력적인 시장이 될 수 있다. 불안정성의 원천은 무엇인가. 우리 자신에게 답이 있다. 개미군단이든 기관투자가든 국내투자가들의 투자행태가 불안정성의 근원이다. 다시 말해 증시의 불안정성은 경제의 불안정성을 반영한다고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외국인들의 투자대상은 우리 경제가 아니라 우리측 시장참가자들의 행태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투자」라기보다는 「게임」의 성격이 더욱 크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 게임은 과연 영화(零和) 게임인가, 비영화(非零和) 게임인가. 전자라기보다는 후자의 성격이 더 크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이 게임에서도 게임판을 마련한 국내 증권회사들은 판돈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겠지만 능력이 부족한 개인투자자들은 많은 수업료를 지불해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의 증시상황이 내일의 우리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지난 86∼88년 3저 호황기의 경우를 되돌아보자. 85년 5% 상승에 불과했던 종합주가지수는 86∼88년 연평균 71%로 급상승한 후 89년에는 33%나 추가 상승했다. 이에 따라 86년 300포인트 수준에 불과하던 종합주가지수는 89년 중 1,000포인트에 육박한 바 있다. 85년 중 6조6,000억원이었던 주식시가총액도 89년에는 약 96조원으로 4년 만에 14배 이상 늘어났다. 86∼89년 주가상승에 따른 자본이득(캐피털 게인)도 72조원에 달했다. 이는 88년 국민소득(GNP)의 56%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러한 자본이득은 어떻게 지출됐는가. 당시 한국은행 조사자료에 의하면 이는 89년 이후의 소비지출 증대를 초래했다. 소득증대를 능가하는 소비증대가 평균소비성향의 상승을 가져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부작용은 여기에 국한되지 않았다. 주가상승세가 둔화하기 시작한 88년부터 토지가격이 상승하기 시작, 86년 7%에 불과했던 전국평균 토지가격상승률이 88∼90년에는 연평균 27%에 달했다. 우리 경제도 홍역을 앓았다. 비록 90∼91년 연평균 9.3%의 높은 성장률을 이루었으나 부동산투기를 수반한 물가불안이 과잉지출과 결합, 88년 사상최대 경상수지흑자(141억달러)에서 90년과 91년의 21억달러 적자와 87억달러 적자반전이라는 대가를 낳았다. 이러한 어려움은 91년 후반기 이후 긴축정책에 의해, 92∼93년 석유파동 이래 최악의 불황을 맞음으로써 종식됐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겪은 고통은 매우 컸다. 물론 90∼91년의 경상수지 악화는 당시 미국경제의 침체와 국내 임금상승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면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현재와 당시 상황의 차이는 자본시장이 개방됐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증시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자본이득의 상당부분이 해외로 유출되는 메커니즘이 구축돼 있어 국내경제에 주는 충격이 당시보다 다소 작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데 만족할 것인가. 구조조정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 경제가 자본시장 활성화로 인해 얻을 것으로 기대되는 긍정적 효과는 매우 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 경험이 말해주고 있는 부작용에 대한 적절한 사전 대비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내년도 경제운영과 관련된 여러가지 염려스러운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오늘보다 중요한 것은 내일이다. 내년 이후 정책당국이 경제상황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갖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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