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민주주의=좋은 정부? 환상을 깨라

■ 민주주의의 마법에서 깨어나라(존 던 지음, 레디셋고 펴냄)
지배자에 복종 스스로 조절 가능… 최선의 정치제도로 생각되지만
공익 위한 법안 국회통과 좌절 등 제 기능 하지 못하는 경우 많아
현대 민주주의 모순·맹점 고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좋은 정부'와 동의어로 여긴다. 아니, 꼭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민주주의만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유일한, 최선의 정치제도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룬 듯 한다. 일부의 통치자만이 지배력을 가지던 고대의 신정주의와 절대군주제에 대한 반발, 사회주의에 대한 실패한 정치적 실험 등이 뇌리에 각인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문제는 이런 믿음이, 많은 국가가 민주주의만 도입하면 금세 훌륭한 통치 능력이 어떤 식으로든 저절로 생겨날 것이라는 환상으로까지 발전됐다는 점이다. 이 환상은 과연 정당한가.

정치학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이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킹스칼리지 정치학과 명예교수인 존 던은 저서 "민주주의의 마법에서 깨어나라(원제: Breaking Democracy's Spell)"를 통해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가 사실은 매우 불분명하며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우선 현대 민주주의가 가진 모순과 맹점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왜 민주주의가 최선의 정답으로 여겨지게 됐는지를 살펴보자.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의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지배에 대한 복종을 강요받지 않는데 있을 것이다. 복종은 본질적으로 불쾌하고 모멸적인 상태이고 개인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다. 저자 또한 민주주의의 진정한 매력은 복종의 기회를 스스로 조정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복종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사람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론상으로는 모두가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조정 가능성은 사실 신기루와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지도자를 택하고, 그 지도자는 우리가 넘겨준 권리만큼만을 행사할 수 있으리라 믿지만 대부분은 생각보다 더 많은 권위를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넘겨주는 경우가 많다. 참여를 독려하는 과정 등이 원래 규칙에 따라 정확하게 진행되지도 않는다. 저자는 애초부터 민주주의에는 이런 부분에 대한 조정 장치가 없다고 말한다. 더불어 민주주의가 가져온 일련의 무질서들, 이를테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등의 사태들 또한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라는 결정 매커니즘에는 애시 당초 훌륭한 결과를 향해 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공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해야 이미 존재하는 방향성을 파악하고 법으로 규정할 뿐이다.

저자가 이처럼 민주주의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 대해 다방면으로 고찰하며 이끌어내려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장점과 단점, 한계에 대한 정확한 자기 인식이다. 민주주의가 지금과 같은 굳건한 권위를 가지게 된 개념을 명확히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는 길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 과연 이 정치사상이 어느 부분에서 우리가 더 나은 판단을 내리도록 도와줄 수 있는지, 그리고 어느 부분에서 우리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강조점이다.

한국 정치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는 시점에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 나온 점은 반갑다. 하지만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 큰 아쉬움을 남긴다. 가뜩이나 쉽지 않은 정치철학적 주제를 쉽게 풀어내지도 못할 뿐 아니라 비문도 지나치게 많아 오히려 혼란이 가중된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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