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각종 비리와 부실 의혹에 시달리는 국민은행장의 연봉이 성과급을 포함해 9억원이나 되고 신한·우리·하나은행장도 7억원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금융사고나 부실이 커진 은행의 최고경영자(CEO)에 과도한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에 따라 올해 전현직 시중은행장 또는 금융그룹 회장의 성과급이 크게 삭감되거나 반납될 전망이다.
은행권도 실적이 좋을 때에는 연봉을 크게 올리고, 실적이 나빠도 연봉 조정을 하지 않거나 올리는 기존의 관행을 없애고자 성과체계모범규준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4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장의 평균 연봉은 세전 기준으로 성과급과 기본금을 합쳐 7억7,800만원이었다.
민병덕 전 국민은행장이 9억5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서진원 신한은행장이 8억2,500만원, 이순우 우리은행장이 6억9,600만원, 김종준 하나은행장이 6억4,100만원이었다. 민병덕 전 행장은 기본급 5억원에 성과급을 4억500만원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연봉 3억4,000만원에 비해 2배 이상이 되는 수준이다.
최근 도쿄지점 비자금 의혹, 예적금 담보 환급액 허위 보고, 주택기금 횡령 사고 등으로 특별검사를 받는 국민은행장의 연봉이 가장 높다는 점도 눈에 띈다.
문제는 이들 은행의 지난해 실적이 평균 20% 감소했는데도 이들 은행장의 연봉은 최대 20%나 올랐다는 점이다. 서진원 신한은행장의 경우 지난해 연봉을 전년보다 1억원 이상 더 받았다.
금융지주 회장들도 지난해 평균 연봉이 21억원에 달했다.
금융당국은 4대 은행이 성과급을 결정할 때에 최근 각종 부실과 비리로 종합검사 또는 특별 검사를 받는 점을 고려해 결정하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은행이 내부 통제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서 CEO 성과급 잔치를 벌일 경우 국민의 비난이 쏟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금융권 성과보수 현황을 공개해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등에 압박을 가한 데 이어 은행권 자체적으로 성과체계 모범 규준을 개정하도록 지도할 방침이다. 실적이 좋으면 많이 받되 나쁘면 그만큼 덜 받는 ‘실적 연동형’ 선순환 구조로 만드는 게 골자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국내 금융을 대표하는 은행들이 각종 비리와 부실로 신뢰가 땅에 떨어진 마당에 은행장이 성과급 챙기기에 나선다면 말이 안 된다”면서 “백의종군하는 자세로 새로 태어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사 성과급 지급은 자율적으로 결정한 사안으로 금융당국이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면서 “다만 성과체계의 하방경직성은 심각한 문제며 여러 상황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책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강한 의지를 감지한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민병덕 전 행장은 최근 성과급을 반납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는 “국민은행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성과급을 지급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제가 받은 성과급에 대해서도 언제든지 반납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의 수십억원대의 스톡그랜트(주식성과급)도 최근 분위기를 고려해 지급 심사 자체가 무기한 연기됐다. 이는 사실상 지급이 힘들게 됐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올해 4대 금융그룹 회장과 은행장의 성과급이 대폭 삭감되거나 지급이 아예 안 될 가능성이 커졌다.
올해 1~3분기 국내 은행의 누적 순익은 4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7조5,000억원)의 58.9% 수준으로 사실상 반 토막 난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각종 금융사고로 대내외 여론이 악화하는 점도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해 은행들의 실적도 나쁜데다 각종 사고로 이미지가 크게 악화 돼 최고경영자로서도 성과급 받기에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디지털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