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수필] 저마다 할말은 있다는데

金容元(도서출판 삶과꿈 대표)연극배우가 무대 위에서 맡겨진 역(役)을 해 가다가 도중에 잠시 끊고, 관객을 향해 『여러분이 저라면 이런 경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직접 묻는 형식의 대본(臺本)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관객의 공감(共感)을 더 끌어내기위한 호소였다. 가령 창녀촌 얘기의 연극에서 가련한 창녀역을 맡은 여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외칠 수 있다. 『“제가 몸을 팔고 싶어서 이곳에 들어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저로서는 제대로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돈만 뜯으려는 포주, 매춘을 단속한다는 경찰의 실상, 동물적 욕구만 채우는 몰인정한 손님들 틈에서 도대체 저는 어떻게 헤쳐나가야 합니까?”』 다시 연극이 진행되어 가는 어느 때쯤 이번엔 포주가 관객에거 푸념한다. 『이것도 사업인데 저에게 무얼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창녀 하나 잡아다가 일 시키고 관리하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여러분은 보시지 않았습니까. 창녀는 손님과 시시덕거리기만 하면 되지만, 모든 뒷감당은 제가 해야 합니다. 마음으로야 저도 인색하지 않습니다.그러나 자선사업은 아니지 않습니까』 조금 뒤에 등장한 경찰관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제가 언제 포주나 창녀의 등을 치고 돈을 뜯어 냈습니까. 직책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창녀촌에서는 별의별 사건이 다 일어납니다. 계속 늘어나는 그 많은 창녀들을 전들 어떻게 합니까』 사람과 사람의 관계설정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 연극대본이다. 도둑·검찰·성직자·어머니가 얽히는 신파 스토리 전개일 수 있고, 부패한 공직사회 내막, 더럽고 치사한 정치현실이 소재로 잡힐 수도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희곡작가의 선택에 달렸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한판의 연극 같다. 범위를 넓히면 넓히는 대로, 좁히면 좁히는 대로 기막힌 사연들이 널려 있고, 저마다 할말 있다고 한다. 재벌·정부·은행의 팽팽한 긴장관계에도 그 속을 들쳐 보면 말못할 복잡함이 얽혀 있을 것 같다. 그밑에서 심부름이나 하는 조연배우들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경영주·정부·정치인들, 흐지부지된 정부조직개편의 당사자들, 개혁대상에 오르는 무수한 면면들, 심지어 왕따의 주인공들도 무대에 세우면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열연을 할 것이다. 관객을 향해서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다고 하나 여러분이 보시는 바와 같이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라고 할듯하다. 누구나 최선을 다하는데 왜 안풀리는가. 그때그때「힘의 논리」로 밀어 붙여야만 하는가. 관객은 언제나 엄정하다는 것이 연극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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