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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KB금융지주 사외이사 8명은 오후3시부터 4시간 넘게 확대경영전략위원회를 열었지만 거취 문제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고승의 이사만 즉각 사퇴를 표명하면서 사외이사직에서 물러났지만 그는 임기 연장이 불가능해 사의 표명을 실질적으로 대표할 수 없다.
금융 당국은 잔뜩 화가 났다. 이경재 전 이사회 의장이 사의를 표명한 후 KB 측에 결심할 시간을 줬고 그 결과물로 이날 사외이사들이 대부분 사의할 줄 알았지만 결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특히 상당수 사외이사가 이날 회의에서 즉시 용퇴에 찬성 입장을 보인 반면 김영진 이사는 끝까지 반대 입장을 고수했고 결과적으로 KB 측은 발표문 맨 앞에 "결론을 내지 못했다"는 문구를 넣었다. 고 이사의 사의 발표는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포장 선물'에 불과했다.
당국은 실제로 사외이사 중 좌장 격인 김 이사와 조재호 이사 등 2명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의 해임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김 이사는 당시 "임 회장에게 이렇게 나가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 명백한 관치로 KB를 망하게 하려는 시도"라면서 노골적으로 당국을 비판한 바 있다. 이들은 KB 회장 인선 때도 외부 인사 선임을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당국은 오는 12일 열릴 임시이사회에서도 이들이 사퇴를 거부할 경우 LIG손보 인수 승인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전원 사퇴는 아니더라도 2명은 사퇴 대상에 포함돼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못박았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뻔히 아는데도 좌장인 김 이사가 퇴진을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가에서는 최근 은행연합회와 우리은행 인선 등에서 불거진 정치금융과 관치금융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등에 업고 자신들이 관치에 의해 물러나는 것이라는 인상을 전파하고 싶어한다는 관측을 하고 있다. KB 사태의 본질적 책임의 한가운데 당국이 자리하고 있는데 왜 자신들이 희생양이 돼야 하느냐는 것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7일 "금융 당국이 자꾸 사퇴를 종용하는 모양새가 비치면 또 다른 '관치' 논란으로 퍼질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KB의 독립 경영을 보장하는 선택이라는 얘기다.
또 다른 이유로 1962년 군사정권 당시 부정축재자로 내몰렸던 고(故) 김지태 씨의 4남이라는 개인적인 배경을 꼽을 수 있다. 김지태씨는 재판을 받던 중 문화방송과 부산문화방송·부산일보 주식, 부일장학회 소유 토지 등을 5·16장학회에 기부한다는 서명을 하고 나서 공소취소로 석방됐다. 김 이사를 포함해 김지태씨의 유족은 2월까지 국가와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과거 박정희 군사정권에서 강탈해간 재산을 환원하라며 소송을 벌여왔다.
그만큼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인물인데 당국의 압박에 쉽게 거취를 표명할 이유가 없다는 해석이다. 김 이사로서는 자신에 대한 사퇴 압박 역시 '정치금융'의 연장선상이라 보고 있는 셈이다.
김 이사의 사퇴 거부는 이처럼 겉으로는 지배구조 문제에 불과할 수 있지만 실질을 보면 정치적 힘겨루기라는 또 다른 함수가 복합적으로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