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사이트] '넥스트 차이나' 재도약? 병든 코끼리 전락?… 인도경제 어디로

유로존 위기 여파로 지난해 성장률 10년 만에 최악
정책 혼선·재정악화에 신용등급 정크 수준 강등 위기
시장개방 확대 등 경제개혁 성공 여부에 미래 달려


정치 불안과 경제개혁 부진, 경기둔화에 발목이 잡힌 아시아 3위 경제국 인도가 '넥스트 차이나'(Next China)의 명성을 되찾을 지, 병든 코끼리로 쇠락을 이어갈 지 기로에 섰다.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내년 총선을 의식해 모처럼 강력한 경제개혁과 경기부양 의지를 내보이며 경제회생에 매진하고 있다. 싱 총리는 얼마 전 의회에서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어떤 정책이든 동원하겠다"며, 5%로 추락한 성장률을 2∼3년 내에 7∼8%의 고성장 궤도로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의 개혁의지는 극심한 정치 혼돈에 발목이 잡혀 진척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오락가락 정책 번복을 일삼아 온 싱 정권에 대한 신뢰도 이미 땅으로 떨어진 지 오래고, 거듭되는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경기는 뚜렷한 반등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인도 신용등급은 투자부적격인 '정크'등급으로 강등될 위기에 직면했다. 경제개혁의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휘청거리는 인도 경제에는 당분간 험난한 앞날이 예고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넥스트 차이나'로 손꼽혔고, 2004~2008년 평균 경제성장률이 8.5%에 이르는 고성장을 만끽하던 인도 경제는 지난해 최근 10년 사이 가장 낮은 5% 성장률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인 2010년 9.3%의 경제성장으로 건재를 과시했으나 뒤이은 유로존 위기 여파를 피하지는 못했다.

급격한 경기 둔화에 인도중앙은행(RBI)은 신흥국으로는 유일하게 올해 세 번 연속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며 경기부양에 나섰다. 지난해 8%대이던 기준금리는 7.25%까지 낮아진 상태다.

그러나 인도의 고질적인 인플레이션 부담 때문에 더 이상의 부양책을 내놓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도 기준물가지수인 도매물가지수(WPI) 상승률은 지난해 내내 7~8%대의 고공 행진을 하다가 경기 둔화 여파로 완화돼 지난달 41개월 만에 가장 낮은 4.89%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RBI는 저금리가 초래할 물가 상승을 우려해 추가 인하 가능성은 낮다고 강조하고 있다.

인도 성장률은 올해 6%대로 지난 회계연도보다 다소 회복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전망치가 하향 조정되는 추세인 점을 고려하면 뚜렷한 경기 반등을 낙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경기둔화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경제개혁의 발목을 잡는 만모한 싱 정권의 정책 혼선과 정치 불안이다.

싱 정권의 정책 혼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지난해 국제경제계에서 논란이 됐던 인도의 세법 개정안이다. 싱 총리는 식어가는 경제 열기에 불을 지피기 위해 외국인 투자 유치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지난해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외국기업의 자산매입에 대해 1962년까지 소급해 과세하는 반시장적인 방안을 추진해 다국적기업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또 규제당국에 역외 탈세에 대한 강력한 조사 권한을 부여하는 세제 개선안(GAAR)을 추진하다가, 해외 투자자들에게서 정부의 신뢰가 추락한다는 지적에 따라 시행을 1년 미루기로 했다. 이러한 혼선은 내년 5월로 예정된 총선을 의식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재집권이 불투명한 싱 총리의 집권 국민의회당이 민심을 잡기 위해 일관성 없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역사상 가장 어지러운 의회"라는 파이낸셜타임스(FT)의 지적대로 정치 절차가 지지부진하다 보니, 개혁안이 나와도 의회에서 발목이 잡힌다. 최근 정권의 부패스캔들로 여야간 공방이 거세지면서 보험ㆍ연기금 시장개방 확대와 공장부지 매입 절차 효율화 등 핵심 개혁안 입법을 비롯해 100여개 법안이 의회에서 묶인 상태다. 지난해 이후 개혁 목소리를 높이는 싱 정권이 성사시킨 개혁정책은 소매와 항공 등 일부 분야의 시장개방에 불과하다.

이렇듯 정책방향이 오락가락한 데다 인도 정부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외국인 투자가들의 산업 지분보유를 제한하다보니 인도의 투자매력은 날로 떨어지는 실정이다. 인도는 경상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4.2%에 달해 외국자본 유치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RBI가 발표한 지난해 인도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전년대비 50% 이상 줄어든 220억7,800만달러에 그쳤다. 크리스 고팔라크리시난 인도산업연합회 회장은 "경상수지 적자 개선을 위해 금융부문에서도 외국인 지분 보유 제한을 완화해 외국 자본이 돌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상적자로 인한 재정 악화와 정체된 경제개혁은 인도의 국제신용도를 '정크'일보 직전으로 내몰고 있다. 최근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앞으로 12개월 내로 인도의 신용등급이 '투자부적격'으로 강등될 가능성이 적어도 3분의1"이라고 경고했다. 등급 강등이 현실화할 경우 외국 자본의 유출은 인도 경제를 더 깊은 수렁으로 빠뜨릴 것으로 우려된다.

다만 인도 경제에 대한 시각이 비관론 일색인 것은 아니다. 특히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에 대한 기대는 여전하다. 세계은행은 최근 2030년에 인도가 중국과 함께 세계 최대 투자자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고팔라크리시난 회장은 "올해 GDP성장률이 6~6.4%를 기록할 것으로 본다"며 "올해 인도 경제가 반등할 것으로 믿는다"는 낙관적 전망을 밝혔다.

관건은 경제개혁의 성공 여부다. 인도 영자신문 퍼스트포스트는 "부진한 성장, 정체된 정치구조, 선거를 앞두고 횡행하는 선심성 정책 등은 안 그래도 힘겨운 경제개혁에 대한 신뢰를 줄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혁이 좌초를 거듭할 경우 인도 경제는 오랜 터널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FT는 "아무도 인도 경제가 붕괴 위기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경제 회복 과정은 부진할 것이고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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