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이 사상유례 없는 초저금리에도 인수합병(M&A)보다 재무구조 개선에 열을 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경기회복세가 둔화되면서 경영환경이 불투명해지고 있는 탓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초저금리 기조에도 불구하고 미 기업들이 '빌린 돈'을 전통적 세 확장 수단인 M&A 대신 채무 구조조정(리파이낸싱) 등에만 활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문에 따르면 현재와 금리가 비슷했던 지난 2006년 미 기업 대출 중 약 60%가 M&A자금으로 사용됐지만 올 들어 이 비율은 25%선으로 급감했다. 이 비율은 약 30%에 달했던 금융위기 직후(2009년)보다도 낮다.
대신 기업들은 초저금리 기조를 기존 회사채의 고금리를 재조정하는 리파이낸싱이나 자사주 매입을 늘리는 재자본화, 이익을 나눠 갖는 배당금 지급 등에 주로 활용하고 있다. 평균 8~10%선이었던 회사채금리 역시 5% 내외로 낮아지면서 만기채권을 구조조정하는 기업들이 늘었고 대출금으로 자사주 비율만 늘리거나 막대한 배당을 실현하는 등 다소 기회주의적인 행태도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FT는 "이론적으로는 M&A가 촉발돼야 옳지만 대출자금이 리파이낸싱과 재자본화에 활용되며 M&A와 경쟁하는 기현상이 촉발되고 있다"며 "낮은 금리에도 지속 가능한 회복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기업들이 유보금을 쌓아두고도 고금리에 대비해 금융환경만 새로 단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미 제약사인 워너칠코트는 자사매각을 추진하다 인수자를 찾지 못해 포기한 뒤 약 6억달러의 회사채를 발행, 자사주 매입 및 특별배당 등에 사용했다. 설립자와 사모펀드 등이 인수전쟁을 벌이고 있는 컴퓨터 기업 델도 향후 회사채를 발행해 대규모 배당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신문은 "하이일드마켓의 금리가 내리면 M&A가 활성화된다는 기존의 통념이 더 이상 먹히지 않고 있다"면서 "부실기업의 만기채권도 회생 기회를 찾게 됐지만 낮은 금리를 경기회복의 기회로 삼으려던 중앙은행의 계획은 그만큼 불발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