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시장의 예상보다 빠르게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하면서 신흥국에 금융위기의 역사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1970년대 이후 연준이 큰 폭으로 금리를 올렸던 시기를 살펴보면 대체로 글로벌 자금이 신흥국에서 미국으로 빠져나갔고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서 남미·아시아 각국들이 위기를 겪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연준이 이번에는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신흥국의 성장엔진 격인 중국의 경기둔화가 겹쳐 있어 자칫 큰 파장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호주 시드니에 위치한 자산관리업체 뉴에지의 토비 로손 아시아태평양주식선물투자부문장은 19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현재 0.25%인 미국의 기준금리가 내년 말까지 1%로 상향될 것"이라며 "이는 신흥국에 매우 치명적인 소식이다. 더욱이 중국의 경기둔화 우려까지 겹쳐 글로벌 자금은 신흥국에서 미국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서반구 담당 이사인 알레한드로 워너도 이날 칠레에서 연설을 통해 "전세계적인 금리 인상 바람과 중국 경기둔화에 따른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남미 국가들은 화폐가치가 하락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연평균 4.3% 성장했던 남미가 향후 5년간 연평균 3.3% 성장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연준이 금리를 올린 대부분의 경우 신흥국은 위기를 맞았다. 1976년 당시 폴 볼커 연준 의장은 석유 파동에 따른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4.75%였던 금리를 1980년까지 20%로 끌어올렸다. 달러 표시 외채가 많던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들은 달러 가치 상승으로 부채 부담이 늘어나 1980년대 초반 외환위기를 경험했다. 1994년에도 연준은 경기 과열 및 물가상승을 막기 위해 3%였던 금리를 1년 만에 6%로 인상했다. 이에 멕시코가 구제금융 직전까지 몰렸고 남미에는 또다시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이때부터 시작된 달러 강세기는 1997년 태국과 인도네시아·한국 등이 외환위기에 빠지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에는 신흥국 경제의 맏형 격인 중국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불안요인이다. 중국은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7.7%로 1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최근에는 부동산·태양광·철광기업들이 연달아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고 수출·광공업·소매 등 실물경제지표들도 일제히 큰 폭으로 하락해 경기둔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신흥국이 막대한 외채를 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역사적으로 신흥국 금융위기는 신흥국이 막대한 외채를 지고 있는 상황에서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때 찾아왔다"며 "터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아르헨티나·태국 등이 현재 막대한 외채를 지고 있어 신흥국 금융위기의 역사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분석했다. 이외에 러시아·터키 등이 각각 정치발 금융시장 혼란에 직면해 있고 인도와 인도네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브라질 등이 올해 반시장적 포퓰리즘을 유발하는 대선 및 총선을 치를 것이라는 점도 악재다.
다만 일각에서는 연준이 가장 최근 금리를 올린 2004~2006년에 신흥국이 타격을 받지 않은 점을 들어 이번에도 금융위기는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은 1994년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신흥국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의식해 인상 5개월 전에 시장에 신호를 줬으며 17차례에 걸쳐 점진적으로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에 대다수 신흥국은 주가가 오히려 크게 뛰는 등 별다른 파장이 없었다. 하지만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중국이 연평균 10%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해 신흥국들의 경기를 이끌어 금리 인상에 따른 충격을 완화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다르다는 반박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