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우 40년 지란지교 권오현

실물 사령탑-최고기업 CEO
초등학교 3년때 처음 만나 같이 공부하고 놀며 평생 친구로
반도체로 또 다른 인연…민^관 수장으로 최고의 경쟁력 기대

왼쪽부터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강원도 횡성에서 살던 소년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유학을 왔다. 서울이라고 해야 변두리였다. 이곳에서 평생을 함께 할 친구를 만났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뜻이 잘 맞았다. 어울려 놀기도 많이 놀았다. 물론 공부도 제법 했다. 중학교 진학을 위해 과외도 같이 했다.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가던 때다. 40여년 뒤 한 사람은 우리나라 실물정책의 사령탑이 됐고 다른 친구는 국내 최대 제조업체의 수장에 올랐다.

바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과 지난 8일 삼성전자 새 대표이사에 오른 권오현 부회장의 오랜 인연 이야기다.

홍 장관과 권 대표의 각별한 관계가 관심을 끌고 있다. 두 사람은 '죽마고우(竹馬故友)'다. 두 사람끼리는 서로를 'XX친구'라고 부를 정도로 친하다.

이들의 관계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다. 홍 장관은 1953년생이고 권 대표는 1952년생이다. 하지만 학교를 같이 다녔다. 그때부터 친했던 두 사람은 줄곧 연을 이어간다.

공부도 엇비슷하게 했는데 홍 장관은 최고 명문이던 경기중학교에 갔고 권 대표는 서울중학교에 갔다. 홍 장관은 '죽어도 경기중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반면 권 대표는 하향 안정지원을 했다.

고등학교도 갈렸다. 경기중학교를 나온 홍 장관은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권 대표는 대광고등학교에 갔다.

대학에 갈 때부터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권 대표는 지난 1971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같은 서울대 공대를 쳤던 홍 장관은 낙방했다.

홍 장관은 4수를 했다. 오기가 생겨 문과로 시험을 봐 서울대 무역학과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자주 만나지 못했다. 홍 장관이 대입 준비를 오래한 탓에 인생 주기가 안 맞았다.

홍 장관은 1979년 행정고시 23회에 합격해 공직으로 들어섰다. 권 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에 가는 등 일이 잘 풀렸다. 1985년부터는 미국 삼성반도체연구소 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이후에는 '삼성맨'으로 삼성에 몸을 담았다.

둘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은 홍 장관이 반도체 담당 과장을 할 때다. 홍 장관은 1997년 통상산업부(현 지식경제부) 전자부품과장을 했다. 반도체 담당 과장이어서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에 갈 일이 생겼다.

당시 삼성전자 부사장이 권 대표를 데리고 왔다. "두 사람이 친구 아니냐"면서. 권 대표는 상무였는데 그때부터는 다시 본격적으로 연을 맺게 됐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권 대표가 사장으로 일할 때인데 홍 장관이 막걸리를 권했다. 권 대표는 "나는 소맥(소주+맥주)만 먹는다"며 시큰둥했다. 예전만 해도 막걸리에 카바이드를 넣어 막걸리만 마시고 나면 머리가 아팠다.

막걸리 애찬론자인 홍 장관은 거듭 막걸리를 권했다.(홍 장관은 중소기업청장 재직시 '막걸리 전도사'로 불렸다.)

결국 권 대표도 홍 장관의 강권(?)에 막걸리를 마셨다. 그런데 권 대표 생각과 달리 너무 좋았다. 그때부터 권 대표는 막걸리를 자주 먹게 됐다. '소막(소주+막걸리)'으로도 마셨다. 사장이 막걸리를 찾다 보니 기흥 공장 주변 음식점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때만 해도 기흥 공장 주변에서는 막걸리를 팔지 않았다. 하지만 사장이 막걸리를 찾으니 음식점도 하나둘씩 막걸리를 들여놓기 시작했다. 막걸리 마시는 사장이 음식점 메뉴마저 바꿔놓은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권 대표도 막걸리에 푹 빠지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권 대표는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지방간이 나왔다.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인데 병원에서 "간을 좀 쉬게 하시라"는 말을 매번 들었다.

그런데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한 뒤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전보다 술을 더 먹었는데도 건강검진 때는 "간도 깨끗하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권 대표는 막걸리를 먹으니 건강도 되찾았다고 좋아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우정은 더 깊어졌다. 요새도 1년에 두세 번은 만난다. 다음달에도 만날 예정이다. 특히 최근 권 대표가 삼성전자 대표에 오르는 경사도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만남은 더 뜻깊을 듯하다. 초등학교 친구가 한 사람은 산업을 총괄하는 주무 부처 장관이 됐고 다른 이는 국내 대표기업의 수장에 올랐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홍 장관과 권 대표의 우정이 오래됐고 그만큼 친한 사이로 안다. 두 사람 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 더 뜻깊다"며 "공공부문 수장과 민간기업 수장이 의기투합해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만들어 냈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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