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뜨거운 햇빛이 먼바다 위에 내려 꽂혔다. 조용한 물결 위에 반짝였다. 녹색으로 무성한 나무에 꼭 붙은 매미는 여름을 알렸다. 더워 지친 한 마리 수캐는 그늘을 찾아 누웠다. 눈을 스르륵 감더니 이내 잠에 들었다. 겉보기에 진도는 이처럼 무섭도록 평온하게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았다.
사고 직후 이곳은 아비규환 상태였다. 수학여행을 간다던 아이의 사고 소식을 들은 부모들은 울음만을 품은 채 이곳으로 왔다. 정부 관계자는 줄곧 당황하며 이곳을 지켰다. 하지만 23일 다시 찾은 진도의 모습은 그때와 사뭇 달랐다.
"미안해" "돌아와줘, 제발" "우리 편한 곳에서 만나자"라고 기도하며 팽목항에 꽁꽁 묶은 노란 리본에 노란 빛깔이 많이 빠져 있었다. 팽목항으로 들어가는 도로 위를 가득 채웠던 무사기환의 현수막도 보기 힘들었다. 밤이 되면 추워지는 날씨 탓에 온 몸을 꽁꽁 둘러싸던 담요 대신 이젠 얇은 반팔 티셔츠 위에 흘린 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계절이 흘렀음은 진도 곳곳에서 알렸다.
그러나 아직 자신의 가족이 '실종자' 상태로 있는 10명의 가족들에게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거나 먼바다를 향해 서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이들에게 있어 기다림은 잔인함과 같다. 진도체육관에서 만난 허다윤양의 아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 있냐, 기다리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휴지로 눈가를 쓰윽 닦았다. 손에 들고 있던 담배 세 개비에 연달아 불도 붙였다. 그는 원래 흡연자가 아니었다. 사고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담배를 하나씩 부탁하더니 이젠 하루에 2갑을 피운다. "내가 자는 게 자는 게 아니다. 잠을 자려고 술을 먹어보지만 머리만 더 아플 때가 많다. 밥을 입으로 떠 넣지만 그게 밥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말하며 다윤이 아빠는 검게 변한 얼굴을 한참 동안 숙였다.
실종자 가족들은 또 하루 10시간씩 뱃멀미와도 싸운다. 바지선을 타고 사고 해역으로 가 수색 현장 위에서 아이들을 기다린다. 한 실종자 가족은 "내 발 아래에 내 아이가 있다고 생각하면 진짜 미칠 거 같다"며 사고 현장으로 가는 심경을 설명했다. 이날 역시 6명의 실종자 가족은 사고 현장으로 나갔다.
기다림에 지친 가족들의 건강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대한약사회 소속의 윤승철 약사는 "사고 초기와 같이 피로회복제·신경안정제는 지금도 많이 나가지만 여름이 되자 피부약이 많이 나간다"고 가족들의 건강 상태를 전했다.
하지만 흘러버린 시간은 사고와 관련된 이들 간에 온기를 품게 했다. 아이를 찾은 이들은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에 들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무원들과의 관계도 이전과는 상당히 달라졌다. 실종자 가족들은 진도체육관 3번 게이트 옆에 "경찰 공무원님들께"라는 편지글을 붙였다. 밤새 지켜줘서 고맙다며, 서 있어 힘들 거라며 의자 하나를 가져다 놓고 그 위에다가 써 놓았다. 사고 직후부터 팽목항에서 상황근무를 서던 배모 경장도 "처음과는 나를 대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며 "뜨거운 햇볕 아래 있는 우리를 걱정해 음료수를 전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이 바라는 것은 모두 같은 하나였다. 하루빨리 실종자들이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것뿐이다.
세월호 참사 100일째를 맞는 24일 오후2시 팽목항에서는 진도군청과 실종자 가족대책위가 무사기환 행사를 열어 노란 풍선 100개 띄우고 실종자 10명의 이름표를 등대에 붙일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