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나들길을 걷다, 역사 마주하며 한걸음 한걸음… 단군왕검의 혼을 만나다

고려궁궐터·향교 지나는 문화길
저수지·산림욕장 연결 고비고개길
보문사서 보는 낙조 일품인 석모도
20개 코스 310km 자연 풍광은 덤

강화도를 지키는 최고 요충지에 세워진 광성보 용두돈대 전경. 이곳에서 조선군은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미국군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고려궁궐터에서 바라본 강화읍내 전경. 역사를 배우려는 관람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청동기시대에 세워진 강화 고인돌. 국내에서 발굴된 고인돌 가운데 가장 크다.


강화도 동쪽 해안가에 서서 김포 쪽을 보면 건너편 육지가 손에 잡힐 듯하다. 지나가는 사람이 누군지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강화도와 김포 사이 바다인 강화해협은 최단거리로 300m도 채 되지 않는다. 강화도가 우리 역사에서 처음 유명해진 것은 몽골군을 피해 고려 조정이 이 섬으로 천도(1232~1270년)를 하면서다. 몽골군은 결국 이 조그만 섬, 강화도를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런데 세계 대제국을 건설한 몽골군이 이렇게 가까운 바다를 넘지 못했다는 것이 궁금증을 키운다. 몽골이 유목민족이라서 바다를 두려워했다는 설도 있고 일부러 바다를 건너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고려가 해군력을 유지하며 결사항전 했다고 보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강화도의 지형이 몽골과의 항쟁을 전후한 시기부터 1,000여년 동안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기록상으로 보면 고려 초기 강화도는 수많은 섬과 이들 사이에 갯벌이 존재하는, 주민의 거주 측면에서는 별로 이롭지 못한 곳이었다. 몽골을 피해 고려조정이 강화도로 건너오면서 섬의 인구가 급증했고 이후 강화도 내외의 저습지를 대상으로 대규모 간척사업이 벌어졌다. 그 결과 섬의 면적이 늘어났고 조선 시대와 현대를 거치면서 지금의 해안선 형태로 자리 잡았다. 강화도 내 해발 10m 이하의 평야는 사실상 간척으로 이뤄진 인공평야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지역은 강화도 현재 면적의 3분의1 정도가 된다.

섬에서 볼 수 있는 곧게 뻗은 수많은 뚝방길이 그 증거다. 즉 과거에는 김포 육지와 강화 섬이 그렇게 가깝지 않았고 지형은 더 험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강화도의 역사는 시대와의 투쟁뿐만 아니라 자연과 투쟁의 역사인 셈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간척사업의 결과다. 간척사업으로 강화도는 많은 농토를 얻었지만 단조로운 해안선으로 인해 외적의 침입을 막는 데는 크게 불리해졌다. 간척사업이 진행되기 전인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을 막아냈던 강화도가 조선중기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 군대의 상륙을 쉽게 허락하게 된다. 수도권의 핵심지역인 이 강화도를 방어하기 위해 조선시대 이후로는 수많은 요새와 성곽을 건설하게 됐고 결국 지금의 해안풍경으로 자리를 잡았다.

어쨌든 1,000년간의 간척사업으로 인해 강화도는 아기자기한 섬으로 변했다. 북쪽에서 남쪽에 걸쳐 별립산(해발 400m), 고려산(436m), 혈구산(466m), 진강산(441m), 마니산(472m) 등 비교적 높은 산들이 섬의 중심 축선을 이루고 이들의 양옆으로는 낮은 구릉이 이어진다. 간척사업의 결과 평야지대가 늘어났고 최근 유행하는 걷기여행의 최적지가 됐다. 산들의 정상에 오르면 서해바다와 한반도가 시원하게 보인다. 쾌적하게 꾸민 구릉과 평야는 또한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해준다. 100건이 넘는 지정문화재는 수천년간 면면이 이어온 우리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걷기여행에 좋은 봄이다. 강화도의 걷기여행은 대개 강화버스터미널을 시작점으로 한다.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에서 출발한 3000번 버스는 한시간 만에 강화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터미널을 나오면 왼쪽으로 성벽이 보인다. 강화성이다. 고려시대에 처음 세워진 후 지속적으로 보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서로 잇는 도로에 의해 분할됐을 뿐 산등성이를 이어 쌓은 성곽은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다.

20개 코스, 총 310㎞로 이뤄진 '강화 나들길'의 시작이다. '나들길'은 강화도 걷기여행길의 공식명칭인데 '나들이 가듯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라는 뜻이다. 제주도 올레길에서 시작된 걷기열풍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각지에서 유사한 길을 만들고 있다. 그중에서 강화도는 또 다른 특이한 맛을 풍긴다. 첫째 장점은 서울에서 아주 가깝다는 것이다. 자동차로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적당한 크기의 산과 평야·바다가 어우러지는 풍경도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강화도만의 멋을 제공한다. 중요하게는 자연과 역사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국내 최대 크기의 고인돌(강화지석묘)에서부터 왕궁터 등 고려시대 유적, 조선시대 성곽과 사찰, 단군왕검의 혼이 서려 있는 마니산 참성단, 조선말 외세에 저항한 각종 요새들, 불평등조약의 효시인 조선·일본 간의 강화도조약(조일수교조규)을 체결한 현장까지 찾아볼 수 있다. 최북단에서 북녘땅을 바라볼 수 있는 강화평화전망대는 덤이다.

강화 걷기여행의 시작인 나들길 제1코스인 '심도역사문화길'은 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한다. 이후 강화성 안으로 들어가 성공회강화성당, 고려궁궐터(고려궁지), 강화향교 등을 거쳐 북문으로 나간다. 이어 산길을 따라 북쪽으로 월곶돈대까지 이어지는데 이곳은 한강·임진강·예성강이 이룬 삼합수를 만날 수 있다. 이후 해안도로를 따라 죽 남쪽으로 갑곶돈대까지 간다. 총 길이는 18㎞, 걸어서 6시간가량 걸린다.

나들길 제2코스는 '호국돈대길'이다. 갑곶돈대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강화해협을 따라 용진진, 용당돈대,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보(용두돈대), 덕진진을 거쳐 맨 아래에 있는 초지진까지 이어진다. 남쪽 바다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핵심 바닷길로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 때 프랑스·미국군과 각각 치열한 전투를 치룬 그 군사요충지들이다.

제5코스 '고비고개길'은 과거 강화도를 동서로 연결하던 옛길을 따라 만든 코스다. 강화버스터미널에서 서쪽에 있는 외포리 외포여객터미널까지로 저수지와 산림욕장을 지나는 풍경이 아름다운 길이다. 국화저수지·홍릉·오상리고인돌군·내가시장·덕산산림욕장 등을 지난다.

나들길 코스는 강화도에 딸린 섬인 석모도와 교동도로도 이어진다. 제9코스는 교동도는 월선포선착장에서 교동향교·교동읍성·남산포를 거치며 제11코스인 석모도는 석포여객터미널에서 남쪽으로 섬을 빙 돈 후 보문사에 이르는 길이다. 보문사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서해안 최고라고 평가받는다.

각각의 자연과 문화재들에 얽힌 역사와 강화도 주민들의 애환을 생각하면서 강화도의 길을 걸어보자. 건강을 챙기는 것과 함께 마음도 따뜻하게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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