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금 수혈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위해 회사채 신속인수 방안을 내놓은 지 1개월 이상 지난 가운데 대규모 회사채 만기를 맞은 한진중공업과 현대상선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500억원 이상의 대규모 회사채 상환을 위해 재발행을 해야 하지만 기관 수요가 거의 없어 발행이 여의치 않다. 신속인수를 신청할 경우 높은 금리와 기업 개선방안 제출 등 부담이 적지 않은데다 '부실 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혀 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1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한진중공업은 9월15일 2,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를 맞게 된다. 지난 2010년 발행한 3년 만기물로 당시 발행금리는 5.6%가량 된다. 현대상선 역시 오는 10월 22일 3년 만기 회사채 2,800억원 규모의 만기를 맞게 된다.
한진중공업과 현대상선은 회사채 만기 상환을 위해 회사채를 다시 발행하거나 정부가 내놓은 신속인수제를 신청해야 한다. 신속인수제는 시장에서 수요가 없는 회사채를 산업은행이 우선 인수한 뒤 신용보증기관이 신용을 보강해 유동화시키는 제도이다.
한진중공업과 현대상선은 현재 회사채 재발행과 신속 인수 두 가지 방안을 두고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유보금으로 차환할 수 있지만 업황 악화로 보유 현금이 크게 줄어든 상황이어서 회사채 상환에 사용하기에는 부담스럽다. 현대상선의 2ㆍ4분기 말 기준 현금 보유액은 6,542억원으로 1ㆍ4분기(7,110억원)에 비해 줄어들었다. 한진중공업 역시 2011년 8,540억원에 달했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ㆍ4분기 말 기준으로 6,399억원으로 감소했다.
한 증권사 투자은행(IB) 담당 임원은 "한진중공업과 현대상선은 회사채 발행을 위해 채권 시장 분위기를 지켜보고 있지만 A등급 이하의 조선ㆍ해운업종에 대한 기관 수요가 없어 발행 여건이 여의치 않다"며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를 신청해야 할 상황으로 보이지만 조건이 좋지 않아 이도 저도 선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한진중공업과 현대상선이 신속인수를 택할 경우 회사채보다 0.4%포인트가량 발행 금리를 높여야 하는 부담을 안아야 한다. 또 주채권은행과 여신거래특별약정(MOU)을 맺어야 한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워크아웃에 처한 기업처럼 개선 방안을 내놓아야 하는데다 재무위기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를 시장에 알린다는 점에서 심리적 압박이 심한 것으로 보인다.
정대호 KB투자증권 연구원은 "회사채 신속인수제도와 관련해 현재 두산건설과 한라건설이 처음으로 차환 신청을 했는데 만기 상환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건설업체가 조선ㆍ해운업체보다 수혜를 볼 것"이라며 "한진중공업과 현대상선은 신속인수제를 신청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원 한도가 업체당 1,500억원으로 적은데다 부실기업으로 낙인 찍힐 우려가 있어 결정이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