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한국은행은 안녕하십니까


시각 한국은행은 안녕하십니까

이연선 경제부 차장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는 어려운 결정과 마주하면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골치 아픈 결제서류를 받아 들면 일단 덮고 눈부터 감았다.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이면 대게 사인이 떨어지지 않았다. 눈을 뜨고 상대방 손등을 토닥거리면 오케이라는 신호였다.

김중수 전 한은 총재는 항상 머리 속에 정답을 가지고 있었다. 답을 맞추지 못한 결재서류가 올라오면 대번 못마땅한 표정이 떠올랐다. 때론 속사포 같은 질책이 뒤따랐다. 직원들은 답을 찾을 때까지 진땀을 흘렸다. 그러다 보니 항상 총재 앞에서 쩔쩔 맸다.

“한국은행은 어떤가요? 분위기가 아직 그렇지요?”

요즘 한은 출입기자라고 소개하면 받는 질문이다. 얼마 전 방한한 미국의 석학도 똑같이 물었다. 한은에 대한 질문이라면 당연히 금리의 향배이어야 할 터인데 질문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아니라는 걸 안다. “이주열 총재의 한국은행은 잘 자리 잡고 있습니까”다.

이 총재의 행보는 그만큼 관심과 우려를 동시에 샀다. 취임 며칠 만에 경영라인 국실장을 물갈이 하고, 박원식 부총재는 전례 없이 임기 도중 퇴임했다. ‘역사 바로 세우기’니 ‘김중수 지우기’니 온갖 억측이 쏟아질 만도 했다.

시간이 흐르자 이번엔 정책 행보에 대한 비판이 고개를 들었다. “기준금리 방향은 인상 쪽”이라는 발언은 과했다는 후문이 돌았고, “외환시장에서 시장기능은 작동하고 있다”는 말은 원화절상을 되려 부추겨 외환당국을 곤혹스럽게 했다. 김 전 총재와 차별화에 너무 집착한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김 전 총재 때와 달라진 게 전혀 없다는 정반대 지적도 나왔다.

취임 허니문 기간은 끝났다. 오는 12일엔 ‘젊은 피’인 함준호 금통위원이 새로운 맴버로 합류해 진영이 모두 갖춰진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다. 또 18일 전후로는 부총재를 비롯해 한은의 전반적인 조직개편과 인사가 단행된다.

제 3자 입장에서 볼 때 최근 한은의 인사실험은 상당히 흥미롭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거나 먹이사슬이 분명한 관피아나 정치꾼들과 달리 실력을 인정 받은 내부 출신 수장이 어떤 그림을 그릴 지 호기심이 일기 때문이다. 갈등조정 능력이 탁월한 그인지라 더 궁금하다.

경영라인에 이은 정책라인의 교체는 한은의 통화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주도적으로 통화정책을 진두지휘했던 김 전 총재와 달리 이 총재는 토론을 훨씬 중요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방법이 좋은 지는 훗날 결과가 평가할 것이다.

한은 임직원들이 전하는 ‘주얼리(주열 리) 스타일’은 이 전 총재나 김 전 총재와는 또 다르다. 거기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이번 달 금통위와 인사는 그의 장점을 부각 시킬지 단점을 드러낼지 갈림길이 될 확률이 높다. 그 결과에 따라 4년 임기도 순탄할지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출입기자로서 이번 달이 한은의 안녕을 묻는 말에 대답하는 마지막 달이 되길 바랄 뿐이다. /bluedas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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