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시스템통합(SI) 업체들이 세계 시장에서 강점을 보이는 이들 분야의 공통점은 뭘까? 국내에서 쌓은 노하우가 해외 수주의 밑바탕이 됐다는 것이다. 세계 1위로 평가받는 국내 전자정부 시장을 시험대로 삼아 쌓은 기술력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선진국 SI 업체들과의 수주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국내 대기업 계열 SI 업체들은 이런 선순환 구조를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자산 5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 집단)의 공공사업 참여를 전면 제한한 '소프트웨어산업 진흥법' 때문이다. 공공사업 참여가 제한되면, 국내에서 기술력과 노하우를 쌓기 어렵고 선진국 SI업체와의 해외 수주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실제 전자정부 구축에 나선 외국 정부들은 "최근 3~5년간 국내외에서 유사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입찰참가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 등 동남아와 중동 국가들은 입찰참가자격 사전 심사에서 '과거 프로젝트 수행 경험'을 높게 평가하고, 미국과 중국도 프로젝트 수행 경험 등 노하우에 높은 점수를 준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수주전은 결국 레퍼런스(수행실적) 싸움인데, 국내 공공사업 수주길이 막히면 결국 해외 사업 수주도 어려워진다"고 안타까워했다.
정부의 의도대로 대기업으로 떼어 놓은 먹거리를 국내 중소기업이 가져간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기업 계열 SI 업체들이 놓친 해외 사업은 선진국 SI 업체들의 몫이 되기 마련이다. 외국 정부들이 신뢰도 높은 대기업으로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먹거리 마련을 위해 도입된 규제가 엉뚱하게도 선진국 SI 업체들의 배만 불려주는 셈이 됐다. 차라리 대기업들이 국내에서 실적을 쌓을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고, 해외 시장에 중소기업과 동반진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취지에도 부합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 정부의 개도국 지원 프로그램인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참여 제한도 마찬가지다. ODA 사업 역시 소프트웨어산업 진흥법상 공공기관 발주사업에 포함돼 있어 대기업이 참여할 수 없다. 그러나 무상 원조를 받는 수혜국들은 정작 우리나라 전자정부 구축 경험이 있는 대기업의 참여를 선호하는 게 현실이어서 실제로 중소기업에게 큰 도움이 못 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해외에서 발주하는 사업에 대해서까지 대기업 참여를 제한하는 것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대못 규제"라며 "수혜국들은 ODA 사업의 대기업 참여 배제에 대해 '우리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반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김능현 기자 nhkimch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