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취임을 하루 앞둔 지난 20일 윤종규(사진) KB금융지주 회장은 오후10시께 자택에 도착했다. 기다리던 기자를 보자 "뭐야, 왜 이러고 있어요"라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짓더니 차나 한 잔 하자며 집으로 이끌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오늘도 노란 넥타이를 매셨네요?"라고 묻자 "서울경제가 그걸 써놓아서 내가 딴 거를 맬 수가 없다"면서 웃음을 이어갔다.
집에 들어서자 환한 가족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최근 아들 윤보령씨의 사법고시 합격 때문인지 집안 분위기는 훈훈했다. "비빔밥을 해주겠다"는 사모님의 친절을 마다하고 윤 회장과 차를 마시며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윤 회장은 KB의 인사 및 조직개편 방향과 관련한 질문에 "박인비 선수 얘기나 하자"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이내 "지금까지는 어젠다와 일감을 만들었고 이제부터 사람과 조직을 보겠다"며 얘기를 풀어나갔다. 1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에서 'KB 윤종규호'의 청사진은 분명히 드러났다. △대규모 외자 유치와 외국인 주주 경영 참여를 통한 지배구조 개선 △스페셜리스트를 육성하는 인사 △KB의 잃어버린 '장사꾼' 기질 회복이 주요 화두였다. 거세지는 온라인뱅킹 움직임에 관해서는 "지난 10년간 은행들이 너무 시간을 허비했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특히 KB의 고질적인 채널 갈등에 대해 해결할 복안이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KB는 결집력과 추진력이 대단한 조직"이라며 "KB의 변화를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고질적인 채널 갈등 "직원 마음 열 자신 있다"=국민(1채널)과 주택(2채널) 합병 이후 KB는 고질적인 채널 갈등에 시달려왔다. 윤 회장은 "본부에는 여전히 (채널 갈등이) 남아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윤 회장은 과거 개인영업그룹 부행장 시절의 일화를 예로 들며 채널 갈등은 리더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가 영업 부행장을 맡기 전 국민은행 영업조직에는 상품본부와 채널본부가 있었고 서로 다른 채널 출신이 맡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통합했죠. 완전히 하나의 리테일뱅크(소매은행)를 만든 겁니다. 그후 지역본부를 순방하는데 지점장들이 저한테 얘기를 안 하는 겁니다. 저 사람한테 얘기를 해도 되나… 마음을 못 여는 거죠. 그래서 제가 먼저 지점장들 지금 마음속이 이렇죠? 불만이 이렇죠? 라며 얘기를 꺼내니 과격한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우리 마음도 몰라준다고. 그것을 다 듣고 저녁에 바로 건의사항들을 분류해 피드백을 하니까 다음부터 달라졌어요. 지금부터도 그렇게 해야겠지만 (채널 갈등은) 믿음이 형성되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특별수당 등을 요구하는 노조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예전 은행 최고재무책임자(CFO)를 할 때 기업설명회(IR)를 하고 나면 노조에도 꼭 사람을 보냈다. 잘해보자는 생각은 같으니까 노조와 건설적인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그는 특히 영업전략 등 주요 경영사항은 언론이나 외부보다는 직원들과 먼저 나누고 싶다는 점을 강조했다. "회장이나 행장의 생각이 먼저 밖으로 표출되고 KB의 리더그룹조차 그것을 모르고 있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가장 소중히 생각하고 중시하고 싶습니다."
◇인사 청탁 두 명에게 경고…스페셜리스트 키울 것=인사에 대한 얘기에는 조심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1월에 인사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순리대로 할 것"이라고 피해갔다.
하지만 KB의 고질적인 인사 청탁 문화는 확실히 근절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윤 회장은 앞서 "인사 청탁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수첩에 기록하고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윤 회장은 수첩이 많이 채워졌느냐는 질문에 "두 사람 정도에게 경고를 했다. 특별히 뭘 했다기보다는 서로 조심하자는 차원에서다"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KB 자체의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전반적인 은행 산업 위기와 관련해서는 "은행들의 대응이 너무 늦었다"고 진단했다. 카톡 뱅킹 등의 출연으로 격변하는 은행 시장에서 소매영업 비중이 높은 KB는 위기를 맞고 있다. 점포 축소 압박은 심해지고 적체된 인력구조도 걱정거리다.
"제가 개인영업그룹을 맡았던 10여년 전 일본은 소니나 유통업체가 이미 은행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우리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봤죠. 당시에 롯데가 파이낸스몰을 만들어 우리에게 입점을 권유했는데 안 들어갔습니다. 유통업체가 금융 이미지를 형성하면 호랑이를 키우는 일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한데 10년 사이에 은행이 뭘 했느냐 하면 솔직히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빠르게 움직여야죠. 지금은 인터넷뱅킹이 트랜잭션(송금, 입출금 서비스) 중심이지만 나중에는 훨씬 빠른 속도로 상담 등으로까지 퍼질 겁니다."
은행이 한발 뒤처지는 이유로 윤 회장은 '순환근무제'를 지목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국민은행에 '스페셜리스트'를 키우는 방식의 인사 시스템을 도입할 것임을 예고했다. "(스마트금융 같은 분야는)10여년 전 했던 친구가 계속해야 해요. 그래야 방향을 잡습니다. 전문 분야에서 순환근무제는 폐해가 있습니다.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를 별개로 키우는 방식으로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윤 회장은 다만 지주 및 은행의 인사 폭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이 깊은 듯했다. 성과중심의 인사를 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지만 조직을 과도하게 흔드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도 있어 보였다. 현재 본부장 중심제인 은행 조직을 다시 부행장 중심의 그룹 체제로 바꿀지에 대해서도 "이제부터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은행은 장사꾼…외국인 주주 경영 참여시킬 것=윤 회장은 KB가 리딩뱅크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장사꾼'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그를 KB로 이끌었던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이 '장사꾼 은행장'으로 불린 일화는 유명하다. 외부 입김에 시달리지 않고 수익에 충실한 은행 본연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KB가 개입과 간섭에 너무 익숙하다"며 "커머셜(수익 창출)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윤 회장은 "공공과 조화를 이뤄야 하지만 은행은 기본적으로 커머셜뱅크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B를 외부의 입김에 시달리지 않는 은행으로 만들기 위해 외국인 주주를 경영에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할 뜻이 있음도 내비쳤다.
이는 과거 국민은행이 골드만삭스나 ING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경영권 안정을 추구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외국인 주주가 은행 이사회에 참여하면 외부의 입김이나 내부의 전횡을 견제하는 방어막이 된다. 윤 회장은 "전략적 투자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성격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좋다"며 "앞으로 사외이사들과 지혜를 모아보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KB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사실 지난해 (행장 경선) 이후 마음을 접었다.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는 문자도 많이 받았지만 더 이상 하면 추해지고 KB에 오히려 짐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KB 회장으로 선임된 직후 하영구 전 씨티은행장과 연락을 주고받았던 일화도 소개했다. 윤 회장은 "하 행장에게서 연락이 왔길래 앞으로도 많이 가르쳐 달라고 말씀드렸다. 앞으로도 잘 되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사퇴한 이경재 KB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에 대해서는 "담백하신 분이다. 자리에 연연하시는 분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오후11시가 넘어 인터뷰를 마친 후 그는 1층까지 기자를 배웅했다. 자정을 넘어 집에 잘 도착했느냐는 문자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낮은 자세로 정평이 난 그의 겸손한 리더십이 KB를 뿌리부터 바꿔나갈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답답할때 조언 구하고 싶어 …" 내정 직후 김 전 행장 묘소 참배 ■김정태 전 행장·외환은행과의 인연 지난 2002년 3월. 삼일회계법인에 있던 윤종규 회장은 김정태 당시 국민은행장의 집무실을 찾았다. 국민·주택 통합은행 인선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터라 김 전 행장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았다. 김 전 행장은 윤 회장에게 "인사가 잘 안 풀리네. 오라는 사람은 안 오고"하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천하의 김 행장이 부르는데 안 오는 사람도 있냐"고 반문하자 김 전 행장은 "그게 바로 당신이야"라면서 윤 회장에 노골적인 애정을 표현했다. 윤 회장은 이렇게 국민은행과 인연을 맺게 됐다. 김 전 행장이 윤 회장을 삼고초려해 데려온 일화는 유명하다. 윤 회장은 삼일회계법인에 몸담고 있으면서 주택은행 미국 상장과 주택·국민은행 합병 등을 조언하며 김 전 행장을 도왔다. 그때마다 김 전 행장은 "와서 도와주면 안 돼?" "최고재무책임자(CFO) 맡아줘"라며 끈질기게 부탁했다. 당시만 해도 삼일회계법인에서 후계자가 없던 터라 이동할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주변 정리가 되자 마음을 먹고 김 전 행장을 찾았던 것이다. 윤 회장은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고(故) 김 전 행장에 대한 감사함과 그리움을 전했다. 자신을 금융인으로 만들어준 외환은행에 대한 고마움도 표현했다. 윤 회장은 KB 수장에 내정되자 가장 먼저 김 전 행장의 묘소를 찾았다고 한다. 윤 회장은 "(내정된 후) 주말에 아내와 함께 일산의 농장에 있는 김 전 행장의 묘소를 찾았다"며 "답답한 일이 있을 때 조언을 구했을 텐데 (작고해) 아쉽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외환은행과도 인연이 깊다. 윤 회장은 광주상고를 수석 졸업한 뒤 외환은행과 한국은행을 놓고 고민하다가 '선배들의 선택'과 '해외에 대한 막연한 동경' 등을 이유로 외환은행을 택했다고 한다. 외환은행에 다니면서 대학을 졸업했고 일 년 늦게 입사한 여직원과 결혼을 하게 됐다. 윤 회장은 "종로 2가 지점을 다니면서 밤에는 84번 버스를 타고 화개사를 지나며 명륜(성균관대)을 향했다. 새벽 두시에 자서 여섯시에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했다. 외환은행 덕분에 집사람과 연애를 할 수 있었고 공부도 할 수 있었다. 마음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