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인간은 '생존·번식·혈연' 위해 소비한다

■ 소비본능 (개드 사드 지음, 더난출판 펴냄)
충분히 먹었어도 뷔페 가면 과식
여성, 몸매 때문에 하이힐에 열광
남성, 고급차를 성적 신호로 이용
지갑 여는 것은 머리 아닌 DNA



불황이다. 그러나 여전히 명품 브랜드 소비,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소비(화장품, 하이힐, 향수, 외제차 등) 행위는 끊이지 않는다. 우리의 소비는 이처럼 이성적이지 않다. 다분히 감성적이며 충동적이고 본능적이다. 그렇다면 이 소비욕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캐나다 컨커디어대학 경영대학원 마케팅 교수인 저자는 진화론적 시각을 바탕으로 소비 본능의 동인(動因)을 분석한다.

첫 번째는'생존'. 뷔페만 가면 우리는 쉽사리 과식하게 된다. 충분히 먹었음에도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저자는 이것을 '다양성 효과'때문이라 말한다. 맛이나 향이 같아도 색깔이나 형태가 늘어나면 사람은 더 많이 먹는다. 실험을 통해 초콜릿 M&M의 색깔과 수를 늘리고 파스타 모양을 각기 다르게 하자 섭취량이 최대 77% 늘어나고, 잼의 종류를 여섯 가지에서 스물 네 가지로 늘리자 시식대 앞에 멈추는 고객이 20% 증가했다는 결과를 얻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소비자들은 이토록 다양성 효과에 취약할까? 여기서 진화론이 제시하는 답은 간결하다. 잡식, 즉 인간은 모든 음식을 두루 먹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필요한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고 단일 음식에 있을지 모를 독소를 피해 가기 위해 여러 가지 음식을 먹으면서 생존해 왔다.

두 번째 소비 본능의 동인은'번식'이다. 여성들이 하이힐에 열광하는 이유도 진화론적 번식 본능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 하이힐을 신으면 실제로 둔부가 약 20도에서 30도 위로 올라간다. 나이가 들면 중력으로 인해 여성의 몸매는 갈수록 처지게 된다. 하이힐은 이 중력의 영향을 되돌려서 몸이 탄력 있고 더 젊게 보이도록 돕는다. 또, 짝짓기할 준비가 된 포유동물이 취하는 자세와 비슷하기 때문에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비친다는 설명이다. 남자는 고급차를 성적 신호로 이용한다. 공작에게 화려한 꼬리가 있다면 남자에게는 페라리가 있다. 수컷 공작이 짝짓기를 할 때 꼬리를 한껏 펼쳐 보이는 것처럼 남자는 고급 승용차를 능력 과시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생존, 번식에 이어 저자가 찾은 소비 본능의 정체는'혈연'과'호혜적 이타성'이다. 진화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유전자의 전달을 중시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같은 유전자를 공유한 존재(부모, 자식, 사촌)에게 투자하는 것은 전적으로 타당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때때로 형제나 부모, 자식보다 친구에게 더 값비싼 선물을 하는 것은 어떠한 이유 때문일까? 저자는 코스타리카의 흡혈 박쥐들을 사례로 들어 설명한다. 흡혈박쥐들은 종종 밤 사냥 후에 빈손으로 혹은 빈 배로 동굴로 들어온다. 그럴 때면 다른 비혈족 박쥐가 굶주린 박쥐의 입으로 피를 넣어준다. 이 같은 경우처럼 저자는 우리가 타인에게 베푸는 호혜적 이타성이 기아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과 같은 수단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풀이한다.

결국 책은 우리의 지갑을 여는 것은 손이나 머리가 아닌 DNA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본능은 소비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진화심리학과 소비 행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엮여 있다. 궁극에 저자는 기업들도 이러한 진화 심리학을 기초로 마케팅 전략을 짜야 한다고 제안한다. 더불어 소비자는 본능을 파악해 주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소비를 적절히 통제해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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