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선 “한국선수 한계? 투쟁심이 강점”

백지선(왼쪽)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이 박용수 코치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스탠리컵을 들어 올리는 현역 시절의 백 감독. /사진제공=대한아이스하키협회


아시아 최초 NHL 우승 경력, 아버지 유언 따라 한국 대표팀 감독 수락

노트북 컴퓨터 2대, 하키 노트 담긴 10킬로 백팩이 ‘움직이는 사무실’

“나는 하키에 빚이 많은 사람”

한국 축구는 거물 거스 히딩크를 대표팀 감독으로 데려와 2002년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썼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도 자국 월드컵을 앞둔 당시의 한국 축구와 상황이 비슷하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D-3년’ 카운트다운에 들어갔고 대표팀 성적은 세계 수준과 거리가 멀다. 축구는 이전까지 월드컵 본선에 단골로 나가기라도 했지만 아이스하키는 평창이 올림픽 사상 첫 출전. 협회의 외교력으로 개최국 자동출전을 부활시키긴 했는데 세계랭킹 23위의 한국은 현실적으로 1승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축구에서는 한국이 포르투갈을, 이탈리아를 이기는 일도 있다. 그러나 아이스하키는 변수가 극히 적은 종목이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선수들로 짜인 캐나다·미국 같은 강국들을 만날 경우 0대20 스코어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NHL 출신의 백지선(48) 대표팀 감독은 “어느 팀과의 경기에서도 접전을 벌일 정도까지 대표팀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고 자신했다.

평창 올림픽 D-3년을 맞아 백 감독을 10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정보 수집을 위해 미국 미시간주에 머물고 있는 그는 아시아인 최초의 NHL 우승자다. 지난달 한미경제연구소는 백 감독을 미국프로풋볼(NFL) 출신의 하인스 워드,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스키 동메달리스트 토비 도슨과 함께 자랑스러운 한국계 미국인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한 살 때 캐나다로 이민, 1985년 한국인 최초로 NHL에 진출한 백 감독은 명문 피츠버그 펭귄스에서 수비수로 뛰며 1991·1992년 우승트로피인 스탠리컵을 들어 올렸다. 그는 2003년 영국 리그를 끝으로 은퇴한 뒤 2005년부터는 NHL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산하 팀에서 코치 생활을 했다. 구단 사상 최장기 코치 재임 기록(9시즌)을 세울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그의 지도로 NHL에 진출한 선수도 여럿이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지난해 여름 백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에 앉혔다. 현역 시절의 영향력으로 따지면 축구의 차범근과 맞먹는 거물. 하지만 협회에 따르면 그를 영입하는 작업은 예상보다 순조로웠다. 백 감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영광이 주어지는 것 아닌가. 제의를 받자마자 수락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최근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는 “한국으로 돌아가 조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감독 계약기간은 4년. 연봉은 현재 국내 프로야구 감독 최저 연봉과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아이스하키를 살려보자”는 백 감독의 권유에 NHL 골잡이 출신 박용수도 대표팀 코치로 합류했다.

백 감독의 미국이름은 짐 팩. 짐 팩은 어딜 가나, 어떤 옷을 입으나 백팩과 함께한다. 노트북 컴퓨터 2대와 선수 지도에 유용한 하키 노트가 든 가방이다. 10㎏이 넘는 백팩에 그의 하키인생이 들어있다. 백 감독은 마이크 뱁콕 현 캐나다 대표팀 감독에게 지도자 수업을 받았는데 당시부터 작성한 노트는 그의 자택 방 한 칸을 채우고도 남는다. 그 자료들을 손수 노트북에 입력해 한국으로 가져온 것이다. 자료 입력을 위해 엑셀·파워포인트 등 프로그램도 독학했다. 백 감독은 트레이드 마크가 된 백팩을 “움직이는 사무실”이라고 소개했다. 소집 때마다 그는 새로운 대표팀 매뉴얼을 선수들에게 나눠주는데 노트북의 방대한 자료들을 정리해 직접 만든 것이다. 매뉴얼에 작은 태극기 그래픽을 넣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백지선-박용수 체제로 처음 나선 지난해 11월 4개국 유로 챌린지에서 한국은 강호 이탈리아, 폴란드를 꺾으며 준우승했다. “나이가 많다는 것과 노련미가 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유망주들에게는 남다른 열정이 있다”며 이름값을 배제하고 어린 선수 위주로 뽑았는데 깜짝 성적을 낸 것이다. “첫판에서 헝가리에 1대6으로 질 때 선수들이 하키 스틱을 너무 꽉 잡고 있더라고요. 긴장했다는 뜻이죠. 제가 한 일은 ‘하키 선수가 돼라’고 말하는 것뿐이었어요. ‘너희는 국가대표 선수다. 이미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는 알고 있을 테니 아는 대로 경기장에서 보여주기만 해라’는 뜻이었죠.” 대표팀은 이후 이탈리아를 4대3으로 이기고 폴란드를 6대3으로 꺾었다.

백 감독은 오는 23일 귀국해 다음 달 초 대표팀을 소집한다. 4월13일부터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열릴 디비전1 그룹B(3부리그) 세계선수권대회 준비를 위해서다. 아이스하키는 수준별로 1~6부리그로 나눠 같은 리그 나라끼리 세계선수권을 치른다. 3부리그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해야 2부리그로 승격된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우승, 올림픽 개막까지 2부리그에 잔류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협회는 올림픽에서 ‘안방 전패’를 면하기 위해 외국 선수 귀화를 적극 추진해 왔다. 실제로 1998 나가노 올림픽 때 일본은 캐나다·미국에서 9명을 귀화시켰다. 아이스하키에서 귀화는 특별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백 감독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외국 선수 9~10명을 데려오면 그 팀을 한국 대표팀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평창 올림픽 이후를 봐야죠. 최대한 우리 선수들을 키워 올림픽을 경험하게 하려는 이유입니다.” 몇몇 중요한 포지션에 한해서만 NHL급 실력을 갖춘 대형 외국 선수를 찾아 올여름까지 선발을 마칠 계획이다. ‘세계 수준과 비교해 한국 선수들이 가장 부족한 게 뭐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은 “우리의 강점은 스케이트를 잘 탄다는 것과 투쟁심이 강하다는 것이다”였다.

미국인 아내와 사이에 1남1녀를 둔 백 감독은 가족을 두고 다시 한국에 들어와야 한다. 마음이 무거울 듯도 했지만 그는 “처음 한국 감독을 맡았을 때부터 내 뜻을 100% 응원한 사람들이다. 내 일에 전념하는 게 가족을 위한 길”이라고 했다. “아이스하키 때문에 행복한 젊은 시절을 보냈고 아이스하키 때문에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어요. 저는 아이스하키에 빚이 너무 많은 사람입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