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산업 휘청거린다/주요업종별 위기상황·대책 긴급점검
입력 1997.04.05 00:00:00
수정
1997.04.05 00:00:00
◎재고폭증에 조업단축사태까지/자동차내수침체 여파 국제경쟁력 위협/반도체D램으론 한계 「비메모리」에 투자/조선가격 20%나 폭락 “수주하기도 겁난다”/철강재고 100만톤… 출혈경쟁으로 “버티기”기간산업이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를 중심으로 반도체, 전자, 철강, 기계 등 국내 주력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재고누적으로 가동을 줄이고 있으며 공급초과에 따라 출혈판매경쟁도 심해지고 있다. 주요 산업이 겪고 있는 위기상황과 그 요인, 대책을 점검해본다.<편집자주>
▷자동차◁
지난 3월24일 저녁 인터컨티넨탈호텔 일식집 「미야마」.
정몽규 한국자동차공업협회장, 김석준 쌍용그룹회장, 한승준 기아자동차부회장, 조래승 아시아자동차부회장, 양재신 대우자동차사장, 김영석 아시아자동차사장, 이종규 쌍용자동차사장, 박정인 현대정공사장 등 한국자동차 산업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차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이루어진 최고경영자 단체 상호공장방문을 끝낸뒤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내수부진과 쌓이는 재고를 걱정하면서 정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자동차에 대한 규제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었다. 전에 없던 모습이다. 회장·사장단의 이날 분위기는 협회의 세제개편건의안, 현대의 조업중단을 거치면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출됐다.
이날 모임과 「집단대응」은 위기의 자동차산업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총생산규모 국내제조업의 10%, 직간접 종사자 1백50만명, 자동차 관련 세수 13조원으로 전체 조세수입의 16% 차지, 종합기계산업의 꽃.」
자동차가 국내산업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다. 따라서 자동차가 흔들리면 국가경제가 흔들린다고 봐도 그리 과장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경제가 흔들리듯 자동차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절반을 차지하는 현대는 8일부터 하루 4시간의 잔업을 중단하는 사실상의 조업단축에 돌입키로 했고, 기아·쌍용 등 다른업체들도 『이런 판매부진이 한두달 지속되면 조업단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대형상용차를 만드는 아시아·쌍용·대우중공업 등은 이미 지난해부터 극심한 판매부진으로 생산감축에 들어간 상태다. 이 상태로 가면 생산규모 증가판매부진재고누적과당경쟁판매조건 완화경영수지 악화의 악순환으로 빠져든다는 우려가 높다. 「흔들리는 자동차」는 재고에서 확인된다. 지난 2월 8만5천여대로 이미 적정 재고(7만대)를 넘어선 완성차 재고는 3월말까지 내수용만으로도 12만대(전체 18만대)를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위험수위다. 완성차업체들이 재고누적에 따른 금융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해 할부기간 연장, 할부금리 인하 등 과감한 판촉전략을 구사하고 있지만 내수시장의 경기가 살아날 기미는 좀체 보이지 않고 있다. 불투명한 전망은 업계의 위기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자동차위기는 내수에서 판매가 부진한 것을 그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올들어 1·4분기 내수는 30만5천9백24대로 작년동기에 비해 21%나 감소했다.
업계는 『내수경기 침체는 국제경쟁력 상실로 이어진다』며 『정부는 자동차를 살리기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고 강조하고 있다. 업계는 또 수출확대, 생산성향상, 경영혁신을 통해 경쟁력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반도체◁
한국수출의 20% 남짓을 차지해 수출의 견인차역할을 해온 반도체산업은 올들어 다소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지난해 3·4분기 한때 6달러까지 곤두박질했던 16메가D램가격은 한일업체들의 감산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며 요즘에는 10달러선으로 회복세다. 하지만 차세대제품인 64메가D램시장이 아직 형성되지 않고 있고, 연말께면 대만이 16메가D램을 쏟아낼 예정이어서 수급불안 요인은 여전하다. 다시말해 최근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가격안정기조가 언제 다시 붕괴될 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다. 특히 가격안정을 위한 한일업체들의 감산정책이 언젠가는 다시 붕괴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고, 어느 업체가 가격상승을 틈타 증산에 나설 경우 수급안정기조가 와해될 가능성도 높아 D램에 치중해있는 우리업체들의 사업전망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에따라 삼성전자를 비롯해 LG반도체, 현대전자 등 국내업체들은 기술수준이 낮은 D램 생산구조를 탈피해 비메모리부문을 집중적으로 보강한다는 전략이다.
▷전자◁
「수출 맑음, 내수 잔뜩 흐림」. 가전산업의 기상도다. 수출은 독립국가연합, 중국, 동남아, 중남미 등을 중심으로 20% 이상 늘어나고 있다. 엔저의 역풍으로 일제와 치열한 가격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업체마다 글로벌경영을 위해 해외생산기지를 다원화한데다 품질·기술력·브랜드인지도 향상 등이 주효, 가전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내수는 정반대다. 극심한 불황으로 수요가 부진하고, 일본외에서 생산된 소니 등의 내수시장 잠식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LG전자의 경우 수출(2월말 현재)은 냉장고(증가율 61%), 세탁기(1백3%), 컬러TV(8.3%), 에어컨(24%), VCR(5%), 전자레인지(5%) 등 5대 주력품목은 상승세다. 반면 내수는 5대가전 전품목이 최고 15%에서 4%까지 전부 줄었다. 이런 상황은 다른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조선◁
『수주하기가 겁난다.』 조선업계 관계자가 『지난 90년대초 1억달러를 웃돌던 초대형 유조선이 최근들어 8천만달러를 밑돌고 있다』며 하는 말이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 조선소들이 건조하는 전 선박이 적자』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같은 극심한 불황은 90년대 중반들어 세계적으로 선박건조시설이 크게 늘어나면서 수요가 공급을 밑돌고 있기 때문. 특히 원화가 엔화에 대해 강세기조를 유지, 대일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도 주요인. 일본 조선소들은 대부분 99년까지의 일감을 확보한 상태에서 2000년 영업을 하고 있으나 우리는 아직도 98년 영업에 매달리고 있다. 올들어 국내 조선소들은 일감확보를 위해 공격적인 영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일부 조선소들은 대형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으나 선가와 금융조건이 크게 불리한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앞으로 조선소 경영난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업계는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이 원유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환된데다 ▲각국의 원유수입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노후선에 대한 항만통제가 더욱 강화되는 추세이며 ▲원화가 엔화에 대해 일시적이나마 약세를 보이고 있는 점 등을 들어 내년 하반기 이후에는 다소 시황이 개선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철강◁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경기침체로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올들어 한보철강과 삼미특수강이 쓰러졌으며 지난해에도 철근업체를 중심으로 부도가 잇따랐다. 이같은 경영난은 「자승자박」이라는게 기업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80년대 후반이후 철강경기가 호황을 누리자 뚜렷한 계획없이 마구잡이로 투자를 서둘렀으나 경기는 지난 89년을 정점으로 하락세를 유지한 것이다.
철강업계는 지난해부터 막대한 재고부담으로 몸살을 앓았다. 시중재고가 1백만톤에 달하면서 생산업체들에 최대의 시련을 안겨주었던 철근을 비롯해 냉연강판(작년 10월 기준 11만8천톤)과 형강(12만7천톤), 강관(30만톤) 등 주요품목 모두가 공급이 넘쳐났다. 기업들은 제품값이 바닥을 치는 와중에도 공장을 풀가동, 자금전 양상의 「버티기 전쟁」을 치러왔다.
하지만 철강경기가 최근들어 조금씩 회생기미를 보이고 있어 기업들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이에따라 연합철강과 동부제강이 지난달초 냉연강판과 용융도아연강판의 값을 각각 3.2%와 3%씩 인상한데 이어 포철도 열연강판 등 주요제품 가격을 인상하기도 했다.
▷기계◁
한국 기계공업진흥회에 따르면 기계류 수출은 올들어 지난 2월까지 39억8천1백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 감소했다. 특히 기계류중 주력수출제품인 수송기계와 전기기계의 수출이 크게 줄어들어 각각 23.4%, 58.4% 감소했다. 이같은 수출감소현상은 3·4월들어서도 지속되고 있으며, 여기에 내수침체까지 겹쳐 기계업체가 초비상경영에 들어갔다. 생산과 출하도 빨간색이다. 지난 1월 기계산업의 생산과 출하는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각각 12.7%, 19.4% 줄어들었다. 전반적인 불경기에 따라 투자가 위축됐고, 엔화약세에 따른 대외경쟁력 상실이 주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산업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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