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명색이 시장경제를 추구한다는 나라인데 시장의 기본질서를 세우고 자유주의를 뒷받침해야 할 법과 규정이 시장원리를 파괴하는 데 쓰이는 것이다. 입법 활동을 하는 국회의원과 법 집행을 담당한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인기 영합을 위해 법을 악용하고 있다. 모든 시장원리를 '법'으로 정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12일 정부당국에 따르면 금융과 유통을 비롯한 시장의 수요ㆍ공급을 통해 가격이 형성돼야 할 곳에서 줄지어 이 같은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10일 여신전문금융업법을 개정해 정부가 카드 수수료율을 정하도록 했다. 9일에는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를 위해 1인당 5,000만원 이상의 예금자와 후순위채 투자자에게 피해금의 55%까지 보상해주도록 한 데 이어 다시 한번 '초헌법적' 법률 행위가 이뤄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행위는 법률개정권을 가진 국회가 그 힘을 남용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카드 수수료율을 당국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은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이러한 분위기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북 전주시를 시작으로 서울시ㆍ경기도 등은 조례 개정을 통해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에 들어갔다. 영세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이지만 다수의 일반 고객들은 마트이용 시간이 줄어들어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표를 의식한 여야는 조례를 바꾸는 식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휘발유 값, 은행의 대출금리, 휴대폰 요금 등 논란이 있는 부분은 모두 법으로 규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의 국회 모습 등을 감안하면 소비자단체 등이 집단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면 법개정을 통해 이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독과점의 폐해가 생길 수 있는 것은 법률로 이를 막고 불합리한 가격책정 관행은 국회 등이 바꿔야 하지만 표를 의식한 행위는 부작용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 경제연구원 원장은 "총선을 의식한 국회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법으로 법 체계를 무너뜨리고 있다"며 "카드 수수료 일괄책정 등은 자유시장경제의 기본원리를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