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말 일본에서 불어닥친 '깜짝 양적완화' 쓰나미가 자동차 업종을 강타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불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본의 추가 양적완화 정책이 엔저 현상을 가속화해 일본과 경쟁하는 국내 자동차 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 업종의 대장주인 현대차(005380) 주가가 곤두박질치며 시가총액 2위 자리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다. 시장 전문가들은 올 4·4분기 실적과 구체적인 배당정책이 확정되는 내년 초까지 마땅한 상승 모멘텀이 없는 만큼 자동차 관련주는 당분간 약보합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3일 유가증권시장에서 현대차는 거래 전일 대비 5.88%(1만원) 내린 16만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현대차가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매입의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고 발표한 지난 9월18일(-9.17%)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세다. 현대차는 이날 장중 한때 6.47%나 급락하며 16만원이 붕괴되기도 했다. 기관투자가는 484억원어치를 내다 팔며 5거래일 연속 매도세를 이어갔고 외국인도 266억원을 매도하며 3거래일 만에 다시 '팔자'로 전환했다.
기아차(000270)는 전 거래일보다 5.57% 내리며 52주 신저가를 경신했고 현대모비스(012330)도 4% 하락했다. 이 밖에 만도(-3.97%), 현대위아(011210)(-8.4%), 에스엘(005850)(-4.82%) 등 자동차 부품주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현대차는 주가가 속절없이 무너지면서 부동의 시가총액 2위 자리마저도 위협 받고 있다. 현대차는 2011년 3월29일 포스코를 끌어내린 뒤 3년 7개월가량 삼성전자에 이은 시총 2위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9월 한전 부지의 고가 매입 논란 후 투자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외국인투자가들을 중심으로 매도 행렬이 이어졌다. 그 뒤로 한 달 반 사이 주가는 20% 가까이 떨어졌고 시가총액은 8조3,705억원이나 줄어들었다.
이날도 현대차의 시가총액(35조2,442억원)은 거래 전일보다 2조원 넘게 날아가며 시총 3위 SK하이닉스(34조9,805억원)와의 격차가 2,637억원까지 좁혀졌다. 전체 시가총액에서 현대차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0년 8월18일(2.98%) 이후 4년 4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3% 아래로 떨어졌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이번주 내에 현대차가 시총 2위 자리를 빼앗길 것으로 봤다.
이번 일본 정부의 예상치 못한 추가 양적완화 정책은 현대차를 비롯한 자동차 관련주에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의 양적완화 확대는 최근 둔화될 기미를 보이던 엔저 현상에 다시 불을 지펴 국내 자동차 업계의 수출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아시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7년 내 최고인 112.9엔까지 치솟았다.
김형민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성장이 둔화된 상황에서 현대차의 한전 부지 매입 이후 외국인의 투자심리마저 급격히 훼손됐다"며 "국내 자동차 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엔화 약세가 가속화되면 현대차로 대표되는 자동차 업종에 대한 수급 공백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업종의 약세가 올해 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신정관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의 펀더멘털만 놓고 본다면 지금 주가는 분명 바닥권이지만 환율과 배당변수 등을 감안한 심리적인 요인을 모두 고려하면 투자자들이 좀 더 관망할 가능성이 높다"며 "올해 4·4분기 실적이 발표되고 구체적인 배당정책이 발표되는 내년 초까지 특별한 상승 모멘텀이 없는 만큼 당분간 현재의 주가에서 등락을 거듭하며 약보합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엔화 약세가 단기 악재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서상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일본 자동차 업체들도 해외 생산 비중을 높이면서 과거에 비해 환율 영향은 많이 줄어들었다"며 "국내 자동차 업계는 중장기적으로 엔화 약세보다는 원·달러 환율의 흐름이 더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