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정상회의 말잔치로 끝날 듯

유로본드·ESM 활용 등 채택 가능성 희박
스페인 국채시장 사실상 마비… 시장 불안 커져
메르켈-올랑드 사전 조율에 일말 기대감


28일(현지시간) 개최돼 재정위기의 해법을 논의하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결국 '말잔치'로 끝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위기 국가들은 유로본드(유로존 공동발행 채권) 도입이나 유로안정화기구(ESM) 활용 확대 등 단박에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대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채택 가능성이 희박하다.

시장은 이미 정상회의를 냉담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재정동맹 강화와 같은 원론적 해법으로는 투자심리를 되살리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스페인 국채시장은 사실상 마비단계에 들어갔다. 스페인 재무부는 26일 30억8,000만유로의 국채를 매각하는 데 성공했으나 3개월물 국채 발행금리가 무려 2.362%까지 치솟아 전달의 0.846%보다 3배 가까이 폭등했다. 독일 30년물 국채 금리가 2.2%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스페인이 단 석 달 동안 돈을 빌리는 대가로 30년 동안 자금을 굴릴 수 있는 독일보다 더 많은 이자를 물고 있다는 뜻이다.

유럽 증시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스페인 증시의 IBEX35지수와 이탈리아의 FTSE MIB지수는 연초 대비 각각 23.79%, 14.06% 급락했다. CNBC는 "EU 정상회의가 증시 반전의 모멘텀이 되기는커녕 내림세를 부추길 것"이라고 이날 내다봤다.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이날 유럽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한 정상회의 의제 보고서 역시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반롬푀이 의장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등이 공동 작성한 7쪽 분량의 보고서에는 전 유럽은행 감독기구 및 유럽 총괄 재무부 창설과 같은 장기 대책만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가 강력히 요구해온 ESM 자금의 역내 은행 직접지원 대책은 이번 정상회의 의제에서 아예 삭제됐고 ECB의 감독기능 강화 부분은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후퇴했다. 현행대로 ESM 자금이 위기국 정부를 거쳐 은행으로 투입될 경우 국가부채 빚더미를 키워 국채시장을 뒤흔들 수 있다.

그나마 유로본드에 대해서는 "국가별 재정지출에 대한 감독이 강화되면 논의할 수 있다"는 식으로 도입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내가 살아 있는 한 유로본드는 없다"고 즉각 강력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유럽 지도자들도 돈줄을 쥔 메르켈 총리의 완강한 반대에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반롬푀이 의장은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10년 뒤 미래에 대한 내용이 논의될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고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 역시 "이번에는 합의가 힘들 것이며 오는 12월 정상회의에서 보다 구체적 내용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몬티 총리는 다만 28~29일 이틀로 예정된 정상회의 일정을 30일까지 하루 더 연장할 수 있다고 밝혀 독일로부터 최대한 양보를 이끌어낼 방침임을 시사했다.

시장은 스페인ㆍ이탈리아와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랑드 대통령이 독일에 맞서는 '강한 프랑스' 정책을 펼 가능성이 크다"고 이날 분석했다. 또한 로이터는 메르켈 총리가 속한 기민당이 ESM의 은행 직접지원을 허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허용을 추진하고 있다고 이날 보도해 메르켈 총리의 입장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주목된다.

올랑드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는 27일 양자 정상회담을 갖고 정상회의 의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조율작업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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