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점을 운영하던 A씨는 지난 2012년 식품위생법상 일반음식점 허가를 받아 영업하던 중 유흥접객행위를 한 것이 적발돼 검찰에서 벌금 50만원의 약식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A씨는 검찰의 처분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해 현재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2. 미군 B씨는 다른 외국인과 함께 택시기사를 폭행한 혐의로 벌금 300만원의 약식기소 처분을 받았다. 이후 B씨는 택시기사를 폭행하지 않았다며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증인 5명을 불러 사건을 심리한 결과 공동 폭행이 인정되고 죄질이 중하다고 판단했으나 '불이익변경금지' 원칙 때문에 벌금 300만원 이상의 형을 선고할 수 없었다.
최근 들어 검사가 피의자를 벌금형에 처하는 약식기소한 사건을 당사자들이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사례들이 잇따르면서 법원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처럼 정식재판 청구가 남발되는 것은 불이익변경금지 원칙 때문이다. 이는 약식기소 사건의 피고인이 항소나 상고를 할 경우 앞선 재판에서 나온 형보다 높은 형을 선고할 수 없도록 한 원칙이다. 지난 1995년 12월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검사의 약식기소 처분에까지 이 원칙이 적용됐다. 약식기소 후 정식재판 과정에서 더욱 과중한 판결을 받음으로써 정식재판 청구를 꺼린다는 점이 반영된 조치였다.
문제는 약식기소 처분 당시 받았던 벌금형보다 높은 형을 받지 않고 무엇보다 징역형을 받을 염려가 없게 되자 정식재판 청구를 남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데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08년 7%였던 정식재판 청구비율은 2012년 13%를 넘어섰다.
이러다 보니 억울한 사연을 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시간지연을 목적으로 재판을 청구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불이익변경금지 원칙 때문에 벌금형 이상의 형을 선고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러지 못해 공정한 법 집행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
아울러 사건처리 부담이 늘다 보니 정작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이들의 권리를 구제해주는 법원의 역할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경우 2012년 1년간 4만4,905건의 고정 사건을 처리했다. 법관 1인당 약 2,400건을 처리한 셈이다. 인근 수원지법의 경우는 법관 2명이 본안 재판을 별도로 진행해가며 1인당 1만8,000건의 사건을 처리했다. 더욱이 고정 사건은 사무분담에서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불이익변경금지 조항이 원래의 취지인 정식재판청구권의 보장으로 사용되지 않고 남용되는 폐해가 잇따르자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미 18대 국회에서 이한성 새누리당 의원은 불이익변경금지 조항을 폐지하는 내용이 담긴 형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으나 본회에서 부결됐다. 이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동일한 법률안을 제출했다.
법원 내부에서도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을 폐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단순히 '더 높은 형을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국민의 헌법상의 재판청구권을 제한한다고 보기 어렵고 폐지된다고 해도 정식재판 청구는 1심 판결선고 전까지 언제든지 취하할 수 있어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정식재판청구권의 남용을 억제해 국민의 입장에서 정말 억울한 소수의 사건이 충실하게 심리되게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더 충실하게 보장하는 것"이라며 "약식기소에 대한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은 폐지하는 쪽으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