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권의 판이 바뀌는 조짐이 본격화하고 있다. 광주 동구의 박주선 의원이 지난 22일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새정연의 주류와 비주류 간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그의 탈당은 일찌감치 예고됐지만 현역의원 1호 탈당이 현실화된 점은 정치적으로 상당한 파장이 예고된다. 박 의원은 탈당·신당창당 선언 기자회견에서 "수도권 의원을 포함해 합류할 의원이 상당수 있다"며 내년 초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자신하기도 했다.
세력 구조 재편이라는 차원에서 박 의원의 탈당은 앞으로 예상되는 새정연발(發) 정계 개편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앞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재보선으로 돌아온 천정배 의원도 있었고 박준영 전 전남지사의 신당 창당 선언도 있었지만 박 의원의 사례는 가뜩이나 위태했던 새정연의 세력 균형에 균열을 일으키는 단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친노무현계의 주류 측은 박 의원의 탈당에 대해 '초라한 개인 정치'라는 식으로 애써 의미를 두지 않고 있으나 추가 탈당 등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내부 단속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반면 비주류 측에서는 분당(分黨) 시나리오의 현실화 가능성을 제기하는 논거로 주류 측을 압박하고 있다.
결국 모든 정계 개편이 그렇듯이 이번에도 핵심은 내년 국회의원 선거다. 5개월여를 끈 새정연의 혁신 논란 자체도 내년 총선 공천에 대한 당내 세력 간의 이해의 충돌이 본질이다. 사무총장제도 폐지 등 당 조직 개편 시도 때도 그랬고 '국민공천단' 방식으로 결론 난 공천 개혁도 그랬듯이 비주류 측은 문재인 대표 체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문 대표 퇴진 요구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다. 혁신안을 자신의 재신임 투표와 연계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였던 문 대표가 결국 당무회의-연석회의의 '정치적 재신임'이라는 방식으로 철회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한 내부 갈등은 박 의원 탈당에다 23일 혁신위의 인적 쇄신 방안 발표로 재점화하는 모양새다.
정확히 이 지점에 새정연의 딜레마가 존재한다. 문 대표와 주류 측은 어떻게든 야권 표의 분산 없이 총선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단속과 통합에 나서고 있지만 해법이 간단치는 않은 상태다. 불과 6개월여 후로 예정된 총선이 다가올수록 문 대표 체제를 벗어나려는 당내의 제 세력들의 원심력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비노 측 또한 또한 제1야당이라는 기득권을 가볍게 포기하고 당장 당을 뛰쳐나가기도 힘든 것이 정치 현실이다.
내년 총선 결과에 나타날 민심의 향방이 핵심이다. '야당은 바람'이라는 전통적 선거 공식에도 새정연의 내부 분란이 장기화하는 이유다. 4·29 재보선에서 확인된 호남 민심의 심상치 않은 동향에다 기존의 정치 구도, 특히 새정연을 부정하는 야권성향 여론의 흐름이 분명 나타나고 있지만 실제로 총선에서 얼마큼 제3당이나 새정연을 탈당한 인사들에게 힘을 실어줄지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그렇다고 어정쩡한 현 상태로 총선에 나섰다가는 상대인 새누리당에 필패한다는 것은 새정연을 포함한 야권 전체의 일치된 관측이다.
각자의 이해와 이기심 때문에 결국은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불리한 결과로 나타난다는 '죄수의 딜레마'와 너무 닮아 있다. 새정연 혁신위원회는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문 대표에게 불출마를 철회하고 부산에서 출마하라고 권고했다. 또 안철수·김한길·정세균·이해찬·문희상 의원 등 전직 대표급 인사들이 열세 지역에 출마할 것을 주문했다. 총선 승리와 나아가 정권 교체를 위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제안을 수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딜레마를 푸는 방법은 서로 믿지 못하게 된 근본적 원인에 대해 결말을 내는 것이 출발이다. 그러지 않으면 감동도 없이 지루하기만 한 새정연 내홍 막장 드라마가 더 길어질 뿐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선거에서 국민에게 철저히 외면받을 수밖에 없어 하는 말이다.
/온종훈 논설위원 jhohn@sed.co.kr